범상칼럼 / 초가삼간의 행복 21

 

과거와 역사는 돌이켜 볼 수는 있으되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 시대의 사회윤리와 문화 등 역시 분명한 이유와 가치를 지녔음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음을 미리 말씀드린다.

필자는 역사를 관조(觀照)함에 있어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고(貪), 싫어(손해)하는 것을 멀리하며(瞋),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통찰이 없는(癡), 탐진치(貪瞋癡)에 바탕을 둔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가에 집중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모든 사건은 탐진치를 원인으로 하여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조건 없는 무한사랑을 인(仁)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는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가려는 자식사랑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 이르기까지,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의 집착으로서 탐진치의 범주에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생명체들은 평소에는 ‘사촌이 논사면 배가 아프다’ 가도 위기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유전자가 가까운 개체들끼리 힘을 모아 생명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맹자의 효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으로서 타고난다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의 인(仁)은 세상 모든 사람이 부모자식 간처럼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던 공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본능에 충실하여 혈연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조선사회는 유독 인맥, 학맥, 혼맥(婚脈)이 거의 일치하는 구조를 가지며, 지역을 장악한 몇몇 거족들은 연합을 이루어 막강한 위력을 떨쳤다.

공자의 생각대로라면 인(仁)은 적어도 인간사회에서는 보편적 사회윤리로 확대되어야 한다. 공자가 인(仁)을 주장한 것은 인(仁)은 동물과 인간이 구별되는 인도(人道) 즉, 인성(人性)이라고 믿었거나 그렇게 주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대에 오면서 인간의 성(性)과 인간을 제외한 만물의 성(性)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으로 전개된다.

현재에서 보면 인(仁)이 누구나 평등한 보편적 가치로 발현되지 못했고, 수양이 부족한 대중은 자신의 유전자를 지켜내기 위한 본성에 이끌려, 결국 개인의 윤리로서 ‘내 자식’, ‘내 부모’ ‘우리 가문’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되었다.

공자 당시 사회는 태어 날 때부터 신분계급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타고난 성(性)을 말하는 것은 신분계급사회를 지탱하는 논리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조선 역시 인간을 국가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가지는 양인(良人)과 태어 날 때부터 모든 의무와 권리가 없고, 사람 아닌 사람으로 취급받는 천인(賤人)으로 나누는 양천제(良賤制)를 기반으로 하였다.

여기에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궁핍해진 국가제정을 확보하기 위해 공명첩을 남발함으로서, 건국 당시 3%가량이었던 양반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신분세탁을 완성하기 위해 백성 전부가 과거에 매달리는 기형적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 시집 온 여성은 반드시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만 했고, 양인 중에서도 더 귀하게 대접 받는 양반으로 진입하는 통로로서의 과거 급제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숙명을 안게 되었다. 흔히 사극에서 대를 잊지 못하면, “죽어서 조상 볼 면목이 없다”고 하는 대목은 바로 대가 끊기면 조상들의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고, 벼슬에 나가지 않으면 가문을 빛내지 못한다는 유교적 입장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며느리들은 대를 이을 아들을 낳기 위해 애꿎은 부처님의 코를 갉아 먹었고, 그것도 효험이 없으면 양자(養子)를 들여서라도 가문을 잇고 평생 남편과 자식의 과거공부의 수발을 들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핏줄이 섞인 손자는 둘도 없는 귀한 존재이지만, (시어머니와) 핏줄이 섞이지 않은 며느리는 영원한 이방인’ 이라는 혈연(유전자)을 바탕으로 한 고부간의 갈등이라는 시집살이가 보태졌으니, 아! 조선의 여성들이여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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