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시인,논설위원)

 

아마 밭농사에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풀매기가 그 하나일 것이다. 이른바 풀과의 전쟁 (?) 이다. 뽑아 놓고 돌아서면 며칠 안가 『지심』이 올라온다. 지심이란 표준어 『김』 또는 『잡초』의 울진 사투리다. 『지심 맨다』 함은 논밭에 『어린 들풀을 뽑아 없애는 것』 을 말한다.

밭 잡초 가운데 목숨이 가장 질긴 것은 아무래도 바랭이와 쇠비름 같다. 바랭이는 땅바닥을 기어가는 풀이다. 뿌리가 악착같다. 깡마른 땅에서는 뿌리 뽑기가 영 쉽지 않다. 식물체가 뿌리와 함께 흙 속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또 다시 살아나는 풀이다. 이 놈은 둘레에 자기보다 키 큰 식물과 어떻게라도 경쟁한다. 기세가 좋을 때는 지상에서 1미터 높이로 자라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자라면 제풀에 수세가 약해지는 풀이다.

다음으로 쇠비름이다. 쇠비름은 태양 기운의 다섯 가지 빛깔을 가졌다고 해서 오행초(五行草), 잎 모양이 말 이빨을 닮았다 해서 마치채(馬齒菜), 이걸 먹으면 장수한다고 해서 장명채(長命菜)라고도 한다. 소나 토끼가 잘 먹지 않는 풀이다. 그러나 예부터 민간과 한방에서는 약재와 나물로도 이용한다. 이놈은 줄기가 붉고 땅으로 기면서 번져 나간다. 내버려 두면 어느새 붉은 색의 쇠비름 밭이 되어버린다. 땡볕에 뿌리째 캐 버려도 시들시들한 척 하다가 비만 내리면 생글생글 살아나는 풀이다. 삶아 놓아도 맹글맹글하여 잘 마르지 않는다.

땡볕에 풀을 뽑다보면 어느 새 땀이 줄줄 흐른다. 작업복도 모자도 온몸이 땀투성이다. 뜨거워진 땅기운이 확 치받쳐 온다. 이럴 때에는 시원한 막걸리 한쭈발과 산뜻한 색시바람 한줄기가 더없이 좋은 청량제다. 막걸리 한쭈발 마시고 색시바람 한줄기라도 불어온다면 온몸에 찐득하게 달라붙은 무더위도 스르르 물러가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바람 이름이 너무 많다. 실바람,산들바람,꽃샘바람,마파람,솔바람,소슬바람,강바람,산바람,맞바람,하늬바람등 80여개나 된다. 이것은 우리 겨레가 지닌 탁월한 자연 관찰력과 뛰어난 언어 표현력을 말해준다. 색시바람,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쓴 <조밭매기>라는 시에 나오는 말이다.

나와 누나와 대연이와/조밭을 맸다./두골 째 매다니/땀이 머리가 젖도록 흐른다./땀이 흘러 눈을 막는다./이럴 때 목욕했으면 좀 좋을까?/풍덩! 물속에 들어갔으면!/햇볕에 시드는 풀 냄새가 섞인/쌔도록한 냄새의 바람이 분다./그러다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아아, 시원하다./누나가 대연이 색시바람 불어오는구나, 한다.(『조밭매기』전문, 안동 대곡분교 3년 백석현,1970.7.24)

벌써 50여 년 전에 농촌 아이가 쓴 시다. 누나가 한 말이지만 얼마나 부드럽고 시원했으면 색시바람이라고 했을까? 『색시바람, 쌔도록한 냄새의 바람』 등 참으로 기막힌 표현이다. 우리말에도 없는 바람 이름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훌륭한 시인인 것이다. 이 시에는 당시 여름날 땡볕에서 일하는 농촌 아이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다. 요즘 아이들에게 『조밭매기』 는 꽤나 낯선 일이요, 색다른 풍경이다. 조는 울진에선 『서숙』이라고 하며, 좁쌀을 생산한다.

지심! 지구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식물체다. 지심이 자란 들풀이 피워낸 꽃과 열매는 곤충과 초식동물의 귀한 먹이가 된다. 물론 광합성작용으로 공기가 정화되고, 빗물 씻김을 예방하는 등 온갖 목숨이 살 터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채소도 애초에는 들풀이었다.

그래서 쓸모없는 잡초란 없는 것이다. 바랭이와 쇠비름도 마찬가지다. 둘 다 생존능력이 지독한 풀이다. 우리는 이런 풀들을 두고 잡초근성이란 말이 나온다. 끝없이 올라오는 그 악착같은 근성, 이것이 땅의 마음(地心) 또는 지극한 마음(至心)이 아닐까한다. 우리도 그와 같은 근성만 가진다면 어떤 일에든 성공 못하랴.

지심과 바람! 지구 생태계에서 다른 생물체들을 존재케 하는 가장 근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무심코 보아 넘긴다. 가장 흔한 것이 가장 귀한 것이다.
어쨌든 여름 더운 날, 한줄기 『색시바람』을 상큼한 청량제로 생각하거나, 『지심매기』를 자기 마음 밭 다듬는 수행쯤으로 여긴다면 이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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