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010으로 바꾸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결혼을 한 지 27년이 지났건만 우리 부부는 아직도 서로 이름을 부른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만났는데, 내가 평사원으로 회사 안에서 미스터 임또는 임명룡씨로 불리던 때, 썸을 타던 아내가 직장을 옮기는 바람에 나는 여태 임명룡씨로 불리고 있다.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고 짧게 부르다보니 실제로는 임명씨로 불린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내 이름이 임명씨인 줄 알고 있었다. 나는 미쓰리였던 아내를 차마 그대로 부를 수가 없어서 친정에서 불리던 세례 이름으로 대신하고 있다. 아내 세례명이 사비나인데 사빈아로 들리는지 사람들은 가끔 아내 이름이 사빈이냐고 물을 때도 있다.

 

1994년 신세기통신이 디지털 무선전화 사업을 막 시작했을 때, 가입해서 받은 017번호를 불과 3년 전까지 23년간 같은 전화번호를 사용해왔다. 나는 불편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제발 010으로 바꾸라고 하도 재촉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교체했다.

 

카카오톡이 되지 않아서 나에게는 문자를 항상 따로 보내야 하고, 수신을 했는지 안했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불편을 너만 모르냐고 구박을 해댔기 때문이다. 내가 임원을 맡은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로 불평을 했다.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함께 소통하면 될 것을 내가 따로따로 문자를 보내놓으면, 회원들끼리 카톡으로 공유하고 의견을 개진해서 그 결과를 거꾸로 내게 문자로 통보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010 번호로 바꾸고 스마트 폰을 쓰면서 문자 하나는 편해졌다. 카카오톡 말고도 카카오 이름이 붙은 앱(application)이 여러 가지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기에 앱을 삭제했다.

 

동네에서 작은 미술교습소 2곳을 운영하던 아내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27년 동안 운영하던 교습소 한 곳을 커피와 샌드위치를 파는 브런치 카페로 바꾸었다. 코로나 사태로 학원은 교육청 지시에 따라 2월부터 3개월이나 문을 닫아야 했고, 이후로도 수강생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결국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학원 문을 닫고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우리는 업종을 카페로 바꾸어 계속 머물기로 했다. 요리를 잘하고 미적 감각이 있기에 얼추 장사가 되겠거니 기대했으나, 변두리 서민 주택 골목과 브런치 카페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지, 사람들은 가게를 구경만 할 뿐 좀체 손님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게를 떠메고 젊은이들이 많은 곳으로 옮겨갈 수도 없고 해서 우리는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핸드폰을 소유한 지 26년 만에 나는 스마트 폰을 배우게 되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배달 주문 서비스 앱이 있다는 소리만 들었지 우리 부부는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 가게에 영업용 컴퓨터 포스를 설치하고 배달 서비스 업체에 신청을 했더니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낯선 시스템을 어렵게 배우고 익혀 준비를 마쳤으나, 막상 배달 주문은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에 물어보았더니 이제부터는 SNS를 활용해서 광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밴드말고는 유튜브(YouTube) 조차도 관심이 없었던 우리는 SNS를 활용하라는 말에 광고를 포기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배우기로 했다.

 

그동안 스마트 폰을 몰라도 사는 데지장이 없다고 항상 주장했지만, ‘먹고 사는 데로 수식어가 바뀌니 스마트 폰이 내 삶에 지장을 주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워진다. 한편으로 스마트 폰을 배우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017을 너무 오래 유지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스마트 폰으로 유투브를 즐기는 것도, SNS를 활용하여 먹고 사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부부는 문화적 콘텐츠를 이용하는 데도 뒤쳐져 있었다. 배우면 고루해지지 않는다 (學則不固) 는 말이 절실히 다가온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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