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 본사 칼럼 최고위원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2020년 사자성어는 아시타비(我是他非). 교수 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아시타비가 32.4%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고 한다. 아시타비에 이어 후안무치(厚顔無恥)21.8%2위에 올랐다. 아시타비는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을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다.

 

후안무치는 낯짝이 두껍고 뻔뻔해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으로, 내로남불과 일맥상통하나 비판의 강도는 좀 더 세다. 누군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좌파와 우파를 자석의 N극과 S극에 비유하면, 자 모양의 막대자석이 아니라 자 형태로 말굽자석이 된다고 했다. 교수들의 표현처럼 내로남불, 후안무치의 시대를 살면서 그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군사정부 시절 프랑스로 망명해 파리에서 택시 운전을 했던 진보 인사 홍세화씨가 지금 정권의 핵심세력인 586을 향해 민주를 팔아먹고 사는 민주건달이라 비판했다. 그에 앞서 독재정권을 누구보다 혐오했던 진중권씨는 요즘 매일같이 여당을 향해 맹폭을 가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도 이 정권은 민주와는 거리가 먼 독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 모양이다. 그렇기도 한 것이 민주화운동 이력으로 집권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오히려 퇴보시키고 있다. 민주 국가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선거법이다. 그 선거법을 이 정권은 여당 혼자 마음대로 바꾸었다. 선거법을 야당과 합의 없이 바꾸는 민주국가는 없다. 그 밖에도 공수처법 등 민주의 근본이 되는 법을 마음대로 개정해서 통과시켰다. 특히 야당의 비토권을 없앤 이번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를 삼권분립 밖에 존재하는 무소불위 절대반지로 만들 여지가 있다.

 

강준만 교수는 김대중 죽이기를 써서, 은퇴했던 김대중 대통령을 정계로 복귀시켰고, 훗날 대통령까지 오르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 정권도 그 연장선에서 집권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강준만 교수도 이 정부를 사정없이 비판하고 있다. 이 정권의 싸가지 없는 정치에 한국사회가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정권의 내로남불을 정리하다가 너무 많아서 도중에 포기했다고도 한다. 한마디로 전부 내로남불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최장집, 서민 교수 등 이 정권에 치를 떠는 진보 지식인이 한 둘이 아니다. 정권 탄생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지식인들이 오히려 비판이 쏟아놓는데도 지지율은 여전히 40%를 육박한다.

 

요즘 내로남불 만큼 유행하는 심리학 용어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확인편파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기존에 형성된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객관적 사실이나 상황이 제시되었을 때, 자신의 기존 관념에 맞는 정보만 선택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확증편향이고, 확증편향으로 자신의 행위를 판단하면 내로남불이 된다.

 

임명장을 수여할 때는 우리 총장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개혁대상 1호가 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안무치(厚顔無恥)에서 부끄러울 치()자를 보면 귀[] 옆에 마음[]이 붙어있다. 자신의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진다. 낯짝이 너무 두꺼운 사람들은 그 화끈거림이 없다. 지소미아 파기를 지지했던 80%가 다음날 지소미아 연장에도 그대로 지지율을 보이는 것이 후안무치다.

 

내로남불의 반대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의 입장을 보는 것이다. 막대자석의 양쪽은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말굽자석은 상대가 바로 앞에 있다. 말굽자석 안쪽에 거울이 있다면 상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볼 것이다. 아니 지금 같은 경우는 거울이 필요도 없다. 앞에 보이는 상대측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똑 같이 행동하면서 아니라고 우기는 것이 결국 내로남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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