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원래 이야기는 이랬다. 어느 중학교 미술시험에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 사진이 실려 있고, ‘이 작품의 조각가 이름을 적으시오라는 문제가 나왔다. 수업시간에 착실히 공부한 학생이 답지에 로댕이라고 적었다. 그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 커닝을 하면서, ‘자를 잘못 읽는 바람에 오댕이라 적었다. 그 오댕을 커닝한 다음 학생은 베낀 것이 표가 나지 않게 잔머리를 굴려 덴뿌라라고 적었고, 그 다음 학생은 오댕이나 덴뿌라는 일본말이라는 생각에 우리말로 고쳐 어묵이라고 썼다. 어묵을 베낀 다음 학생은 그 조각가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서양 사람이었다는 것이 떠올라 소세지라고 적었다. 결과는 정답 로댕을 쓴 학생을 빼고 나머지는 커닝이 들통 나서 선생님께 불려나가 꾸지람을 듣고 손바닥 매를 맞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결말에 이의를 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커닝은 나쁜 행동이고 나쁜 짓을 하면 혼나는 것이 지극히 당연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교장선생님이 바뀐 그 학교에 똑 같은 시험문제가 나왔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같은 순서대로 커닝을 했다. 다만 소세지를 커닝한 뒤에 학생이 스펨이라 적는 것을 보고 다른 아이는 런천미트라고 쓴 것이 예전과 달랐다. 선생님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커닝한 학생들을 꾸짖고 벌을 주려는데 학부모로 구성된 폭력방지위원회에서 폭력교사로 지목하는 바람에 직위해제 되었고, 개량한복을 입은 미술선생님이 새로 왔다.

교장선생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력방지위원회 주재로 커닝 대책회의가 열렸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마음의 빚을 졌다는 소리를 듣는 위원장이 진행을 맡았다. ‘런천미트라고 쓴 배민 학생의 아버지다. 그는 자신의 딸이 절대로 커닝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세지에서 런천미트를 연상할 정도로 기발한 학생이 왜 커닝을 했겠는가라며, 당시 수업시간에 그 학생이 연구주임과 공동 논문작성을 위해 연구실에 머물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했다.

듣고 있던 학부모 한 사람이 요기요!” 하며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는 스펨이야말로 기발한 발상이라 주장했다. 스펨은 돼지고기 함량이 90% 이상인 반면, 런천미트는 닭고기 함량이 30% 이상 포함돼 있고 가격도 스팸의 절반 수준인데, 런천미트가 커닝이 아니면 스펨도 당연히 제외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소세지를 적은 학생의 부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런천미트나 스펨은 결국 소세지에서 비롯했으니 원천적으로 소세지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런천미트와 같은 편에 속한 소세지도 커닝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어묵을 적은 학생의 어머니는 안달이 났다. 마침내 그녀는 교장선생님의 주특기인 편 가르기신공을 펼쳤다. “일본말을 보고 도저히 참지 못해 어묵이라 적은 학생이야말로 애국자라며, 오댕과 덴뿌라는 아무래도 토착왜구 느낌이 난다고 말했다. 토착왜구라는 말에 학부모들이 술렁댔다. 편 가르기 신공으로 아들을 구해낸 어머니는 득의양양해졌고, 애국자 아들을 둔 부모로서 부러운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졸지에 토왜로 몰리게 된 오댕과 덴뿌라 측 부모들은 화가 났지만 이미 결판이 위원장 쪽으로 기운 마당에 이판사판으로 그 편에 드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커닝을 한 쪽이 다수이기에 소수를 몰아붙이면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거였다. 오댕을 적은 학생의 부모는 이 사태의 모든 책임은 커닝 피해호소인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 학생이 자를 제대로 썼더라면 오댕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피해호소인이 혹시 의도적으로 자를 흘려 쓰지 않았나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궁지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자 덴뿌라는 기발함의 원천은 덴뿌라였다며 위원장을 향해 텀블러를 흔들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시종일관 교장선생님 눈치만 살피던 개량한복 선생님이 결론을 지었다. “미술은 학생들의 창작력을 키우는 교과입니다. 또 모방은 창작의 학부모라고 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의 커닝 솜씨에 감동했습니다. 이 모든 논쟁의 발단은 정해진 답을 요구해온 예전 시험방식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적폐지요. 제가 선창으로 적폐하면 여러분은 청산해주십시오.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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