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어느 한국인이 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에 갔다가 겪은 이야기라고 한다. 혼자 호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로 올라가는데, 다음 층 문이 열리면서 유명한 액션배우 에디 머피 (Eddie Murphy)와 경호원들이 우르르 탑승했다. 맨 안쪽에 들어간 에디가 문 앞에 바짝 붙어 있는 한국인에게 말했다. “파이브”. 애디와 일행들의 험상궂은 인상에 잔뜩 겁을 먹고 있던 그 사람은 무슨 뜻인지 몰라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벽만 보고 서있었다. 에디는 동양인이 파이브(five)’를 몰라서 그러는 줄 알고 손바닥으로 엘리베이터 벽을 다섯 번 두드리며 다시 말했다. “헤이, 파이브!” 그러자 그 사람이 갑자기 옛썰!”하더니 벽에다 이마를 다섯 번 쿵쿵 찢더란다. 에디는 엘리베이터 번호판 옆에 선 사람에게 5층을 눌러 달라고 부탁했을 뿐인데, 겁을 먹은 상대는 눈앞에 막다른 벽이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벽 이야기는 한국 유명 스타가 무명 때 겪은 일화다. 지금은 국민MCTV채널을 석권하고 있는 모씨가 어느 토크쇼에서 무명이었을 때의 서러움을 고백하면서 알려진 이야기다. 하루는 같은 개그맨 선배와 우연히 이태원 골목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고달픈 신인 개그맨 둘이서 하소연을 나누다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어느새 후미진 곳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다 마침 골목에서 건들거리던 깡패 무리 앞을 지나게 되었고, 심심풀이를 찾던 그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깡패들은 두 사람에게 관등성명(?)을 대게 했고, 이름 없는 개그맨이라는 것을 알고는 둘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깡패들을 만나 맨땅에 머리를 박은 채 구타를 당하니 두 사람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얼마 후 쪼그려 뛰기를 시키던 깡패가 두 사람을 일어서게 하더니, “바람박에 지대!” 하고 명령했다. 하지만 서울내기 개그맨들은 바람박에 지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깡패는 더 크게 소리 질렀다. “바람박에 지대라고!” 그러자 선배 개그맨이 쪼그려 뛰기를 하면서 구호를 붙였다. “바람박에 지대, 바람박에 지대후배도 따라할 수밖에 없었단다. 말 그대로 웃픈장면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장면에서는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무리 서울내기라지만, 지금 50대인 그들이 바람박이란 단어를 몰랐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80년대 인기가수 김연숙이 부른 <목로주점>이라는 유명한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흙바람벽을 서울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나 또한 벽을 왜 바람벽이라고 하는 가가 궁금해졌다. 맨흙을 바른 벽이어서 흙바람벽이라고 하나보다 짐작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바람이 숭숭 새는 흙벽이라 바람벽일 수 있겠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바람박이 아니라 비람박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바람[] 때문에 생긴 말도 아닌 것이다.

전문가에게 물어보고 찾아본 바에 의하면 바람벽바람은 같은 말이라고 했다. 바람도 벽이고 벽도 벽인데 중첩해서 벽이라는 의미가 강조 된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각 지방마다 바람벽에 대한 사투리가 달랐기 때문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바람박이라 했고 경상북도 출신들은 비람박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경상남도는 베람박이라 했고 또 다른 지방에서는 베랑박이라고 발음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로보아 바람벽은 벼랑(절벽) + 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벼랑 같은 벽 그래서 벼랑벽이었다가 점차 바람벽으로 불리게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바람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중국에는 개도 궁지에 몰리면 담을 탄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막다른 벽에 부딪히면 반격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신을 최대한 낮추어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먼저다. 벽에 기대라는 말에 바람벽에 지대를 외치며 쪼그려 뛰기를 하는 어린 개그맨을 보고 웃지 않을 깡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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