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먹구름이 사방을 감싸더니 한바탕 여름 소나기를 퍼붓는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까닭에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잠시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안쪽에는 나란히 배열된 노트북에 공시생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에 열중이다. 문득 공부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빗발이 굵어졌다 다시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금방 그칠 것 같지 않다.

그러고 보면 빗발이란 말이 참 재미있다. ‘빗발에서 []’는 확실히 알겠는데 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빗줄기가 마치 길게 늘어뜨린 주렴(珠簾)이나 대나무를 세로로 엮은 발[] 모양이어서 빗발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빗발을 한자로 적을 때는 우각(雨脚)’이라 썼다. 한자를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면 비 다리가 된다. 빗줄기가 굵고 세차게 내릴 때는 쭉쭉 벋은 다리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우각(雨脚)이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두보(杜甫)는 모옥위추풍소파(茅屋爲秋風所破: 가을바람에 초가지붕이 허물어져)라는 한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우각여마미단절(雨脚如麻未斷絶)”라는 구절이 나온다. “삼대 같은 비 다리[雨脚]는 꺾일 줄 모른다.”로 직역할 수 있겠지만, 조선 세종 때 두보의 한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杜詩諺解] 하면서 雨脚빗발로 풀어썼다. 두시언해 역자(譯者)는 삼대로 엮은 발[]을 염두하고 빗발이라 번역했는지, 빗줄기를 질긴 삼줄에 빗댔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아무튼 그 후로 빗발이란 말이 우리의 일상용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이처럼 雨脚이 빗발로 바뀌는 과정도 흥미로운데, 더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는 雨脚의 다리[]가 아예 인체부위를 옮겨 발[]로 바뀐다는 점이다. 그래서 빗발의 일본말이 あまあし(雨足: 빗발)’이다. 다리[]가 어떻게 해서 일본에서 발[]로 바뀌었는지 그 이유 또한 알 수가 없다. 쏟아지는 빗줄기 모양을 보고 다리를 연상할 수는 있어도 인체의 발과 연결 짓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말 빗발을 일본식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雨足이 된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가하면 땅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나기는 발이 달린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 여름철 동구 밖에서 떼를 지어 놀다보면 먼 데서 소낙비가 몰려오는 것이 보인다. 거대하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는 느낌이다. 대지가 서서히 물든다. 우리는 그것을 비가 묻어온다고 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팽개치고 마을로 달리면서 소리친다. “묻어온다! 비 묻어온다아!” 그러나 빗발은 성큼성큼 어느새 조무래기들을 따라잡고,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소나기의 발에 밟힌다.

 

창밖에 빗줄기는 여전히 발을 드리우고 좌르륵 좌르륵 발[] 소리를 내고 있다. 발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짓고, 나는 몽상에서 빠져나와 밖을 바라본다. 지하철에서 비가 오는 줄 모르고 역 바깥으로 나왔다가 난감해진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2천 원짜리 비닐우산을 파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우산 값과 앞으로 내릴 비의 양()을 가늠하는 젊은이가 하늘을 쳐다보는데, 그 옆으로 배달의 민족 후손이 탄 배달 오토바이가 빗발을 뚫고 달려간다. 카페 안쪽에서 공부에 열중인 청춘들이 유리창에 겹쳐져 빗물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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