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올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다소 길 것이라던 장마가 일찍 끝나자, 뙤약볕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해보았지만, 무더위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옛날 어머니께서 무더운 날이면, “오늘은 어찌나 더운지 땡볕이 낫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 속에서도 나는 가을을 생각합니다. 시원한 바다와 계곡이 있지만, 어느새 찾아와 더위를 밀어내고 우리의 지친 몸을 추스르며 땀을 닦아주는, 그 높고 푸른 하늘의 가을을.

나뭇잎마다 내려앉아 노란색, 붉은색을 칠하고 있는 햇살의 눈부신 작업,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황금 들판과 코스모스와 시골학교의 가을운동회. 지나간 가을을 추억하면서 더위를 참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런 사이 가을은 저 멀리에서 다가오고 있네요. 이렇게 철마다 다가 올 계절을 기다리고, 찾아 올 사람을 기다리다 보니, 우리들의 삶이란 기다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다림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즐겁게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좀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좀 더 많은 기다림을 내 생활 속에 만들어놓고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나누게 될 아름다운 사랑을 기다리고, 좋은 우정을 기다리고, 가족이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행복한 결혼을 꿈꾸고 기다립니다.

내 고향 옛날 집에는 단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의 감은 어찌나 단지 우리 가족은 그 감나무를 애지중지했고, 동네사람들은 그 감나무 때문에 우리 집을 부러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하얀 감꽃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서 감이 빼꼼이 나올 때부터는 우리 식구 누구도 그 감나무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태풍으로 아니면 밤사이에 떨어진 감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였으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감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아무리 친구가 한 개만 따 온 나, 그러면 내 딱지 다 줄게하면서 유혹해도 어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추석이 될 무렵이면, 감이 노랗게 변하고 껍질에는 윤기가 돌기 시작하는 데, 이때부터 아버지께서는 감나무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셨습니다. 손님이 오시거나, 점심을 안 먹은 날 오후이거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밭으로 일하러 나갈 때면 감은 몇 개 따서 먹게 하거나 가져가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행동이 그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감일수록 좋은 것이니 따먹지 못하게 해야 하고, 떫은 감은 막 따먹어도 될 것 같은 데, 이상하게 아버지께서는 그 반대로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은 감의 맛이 달아 질 때를 기다리며 따 먹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림은 우리의 삶의 맛을 달게 하고 윤기 나게 하고 늘 지금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믿음진실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이 곧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오면, 높고 푸른 하늘 도화지 위에 그리움과 기다림의 강이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강을 따라 지나간 날들의 기다림을 하나씩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가을은 우리가 기대하며 기다리던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지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들을 찾아 올 것입니다.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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