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최근 성남시 대장동 사태로 주역(周易)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화천대유 천화동인 뇌천대장 등 평소에는 좀체 듣기 힘든 낯선 단어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사람들은 그 용어들이 동양고전 삼경(三經) 가운데 하나인 주역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몹시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주역을 짧은 칼럼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상식에 입각해서 그 용어들의 함의를 간단히 소개해 본다.

주역을 짧게 정의하자면 동아시아 사상의 원형(archetype)이라 할 수 있다. 또 주역을 한 글자로 압축하면 (), 즉 변화(變化). 삼라만상의 변화를 64괘의 도식으로 나타낸 것이 주역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의 원리를 인간사의 도덕적 원칙으로 확대 전환하여 길흉화복까지 예측하는 토털시스템이다. 한편 서양철학의 시작도 변화에서 출발했다. 물론,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근원을 []’로 상정한 탈레스, 그리고 공기라고 주장한 아낙시메네스 등이 서양철학의 시초로 자리매김 되지만, 물질적 우주론에서 벗어나 존재론적 원리를 제시했던 헤라클레이토스를 철학의 범주에 가장 먼저 넣기도 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원리가 만물유전(萬物流轉; panta rhei)’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 그러므로 같은 강물에 두 번 빠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물유전은 훗날 헤겔의 변증법으로 발전 계승된다. 이처럼 동서양 모두 변화라는 화두[subject]가 철학사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달랐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변화는 위에서 말한 대로 강물에 비유된다. 강물은 대지 위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흘러간다. 반면 주역에서 변화의 이미지는 태극(太極)’이다. 강물처럼 S자를 그리며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태극 문양처럼 원도주류(圓道周流) 형태로 변화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지구가 자전을 하면서 한편으로 태양계를 따라 공전하는 것과 같은 이미지다.

강물처럼 앞으로만 흐른다면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대로 같은 물에 두 번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원형으로 선회하는 태극은 반복이 가능하다. 자전과 공전을 통해 하루가 반복되어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반복하여 1년이 된다. 그 속에 4계절이 차례로 순환한다. 이처럼 주역에서 변화는 태극을 통해 되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복은 극과 극이 맞닿는다. 복희씨(伏羲氏) 시대 처음 팔괘가 만들어 졌을 때 건괘(乾卦; 하늘)와 곤괘(坤卦; )가 붙어 있었다. 극에 이르면 반드시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다. 순리를 따르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 겸()이다. 즉 겸손이다.

이번에 난리가 난 화천대유는 주() 문왕(文王) 때 만들어진 64괘 가운데 상경(上經) 14번째에 해당하는 괘() 이름이다. ‘천하동인13번째에 해당하며 화천대유를 받쳐주는 괘다. 대장동과 글자는 다르지만 음이나 뜻이 비슷한 뇌천대장은 하경(下經) 4번째 괘 이름이다. 앞서 주역의 순리는 겸손이라고 했듯이 주역에는 소위 대박이 거의 없는데, 화천대유 괘는 예외라 일컬을 정도로 대박에 해당한다. 그런 까닭에 회사 이름들만 봐도 대장동 개발을 앞두고 설계된 티가 나는 것이다.

화천대유 괘사(卦辭)크게 소유하고 대단히 번창한다[大有元亨]’이다. 효사(爻辭) 중에는 하늘로부터 도움이 있으니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다[自天祐之吉无不利]’라는 내용도 있다. 그런 괘를 자산관리 회사 이름으로 썼으니 1천 배의 이익을 설계할 만하다. 그런데 주역으로 이름을 지었으면 순리도 따랐어야 할 터였다. 화천대유 다음 괘가 지산겸(地山謙)이다. 괘의 배치순서를 설명한 서괘전(序卦傳)에 화천대유는, ‘그 소유가 성대하더라도 넘쳐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다음 괘에 겸손[]이 붙은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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