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하연(시인,작가)
임하연(시인,작가)

사랑하는 아버지!

오늘도 비가 계속 내리네요. 그리움에 목이 메어 아버지를 불러봅니다. 아무리 그래 봐도 들을 수 없으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께 전화벨을 울려보다가 하릴없이 수화기를 놓았습니다. 꿈길로는 제게 오실 수 있으시지요? 소리쳐 부르면 메아리로 대답해 주실 수는 있으시지요? 아쉽고 애통한 마음에 이렇게 물으며 대답을 보채는 제 모습이 아버지 마음을 혹 아프게 해드리진 않았나요? 아니 이젠 이렇게 묻지 않을래요. 꿈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메아리보다 빠르게 제 귓속에 다정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울리고 있으니까요.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신 뒤 곧 돌아가셔서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가눌 길 없는 슬픔 속에서 의논 끝에, 멀리 있는 선산보다 가족들과 좀 더 가까운 용인 땅에 아버지를 모시기로 결정하였지요. 그곳이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서 저도 안심이 되었고요. 낯선 땅 소나무 아래에 아버지를 모시고 한 달쯤 후 고향 집을 찾았을 때, 아버지의 내음이 짙게 밴 뜨락 한 곁에는 난초꽃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은빛 안개 촉촉이 드리우는 새벽녘이면 아버지께서 품안에 넣을 듯이 어루만지시던 동양란과 아기 선인장들이 저를 맞아 저마다 작은 울음을 터뜨리는 듯했습니다. 제 귀에는 저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요.

해마다 이맘때면, 설레는 아이처럼 난초꽃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 이것 봐라!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했구나!” 하고 목청을 낮추시며 저를 부르시던 음성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습니다. 머리를 나란히 맞대고 함께 바라볼 수 없음에, 시리고 허전한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는지요.

그런 날이 그토록 빨리 제게도 올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갑자기 상을 당한 친지들의 애통해 함을 보며 저에게만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늘 마음속으로 기도해 왔거든요. 아버지께서 긴 잠에 드신 모습을 보기 두려워 차라리 이곳 타향으로 도망쳐 오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맑은 영혼은 하늘의 어느 꽃밭을 거니시겠지요. 하지만 이승에서 쓰시던 육신이 온전히 흙으로 돌아가는 그때까지만이라도 무덤 속의 축축한 습기에 젖어 춥지 마시고 어머니가 보내신 내의로 따뜻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때론 고통이 되시던 세상살이의 그 많은 사연을 어찌 다 끊고 계시는지요? 많지 않은 공무원 월급봉투를 덜어내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시며 저희에게 욕심 없는 삶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던 아버지! 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버지를 보며 때로 이해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참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시고 자식들의 가슴속에 보석보다 빛나는 자랑스러움과 떳떳함을 뜨거운 불씨로 채워주신 우리 아버지!

어쩌면 살아계시는 동안 몸이 하나뿐이어서 다 못 펴신 뜻을 이제 힘겨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천으로 만으로 나누어 고루 아름다운 뜻과 꿈을 펼치려 하시나요? 이제 당신은 피붙이 가족들만이 아닌,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그리움의 햇살 드리운 양지바른 자리를 하나씩 헌정 받으셨습니다. 이는 받는 것을 한사코 어려워하신 아버지라도 차마 뿌리치실 수만은 없는 일일 거예요. 아버지가 비우신 우리 가정에도 조금씩 햇살이 들고, 화사한 봄날이면 꽃다발 들고 아버지를 찾아뵈러 간 가족들이 따듯해진 가슴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꽃피우겠지요.

아버지! 아버지는 저희 곁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언제나 곁에 계시면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잡아주시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고 계심을 시간이 갈수록 더 뚜렷이 느끼게 되네요. 저희의 자랑이신 아버지, 언제나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