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의 행복 38

<범상칼럼>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울원자력발전소건설이 한창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설비를 도입했고, 외국인 기술자들과 가족들이 태권도를 배우러 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화 속 공주처럼 보이는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또래의 여인들을 만난다는 것은 환상이 현실이 되는 설렘 그 자체였다.

그런데 오랫동안 품어오던 선망이 깨어진 것은 불과 몇 분이면 충분했었다. -인종의 차별이 아니라 당시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니 불필요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태권도장에서 동화 속 여인들을 대면했을 때의 충격, 반점에 가까운 잡티 가득한 피부, 팔뚝에 노란털이 빼곡한 털북숭이, 여기에 처음 맡아보는 역한 냄새까지……초등학교 때 읽었던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의 동화는 물론, 한창 인기 있었던 주말의 명화에 나오는 멋진 서양인들의 모습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유리잔처럼 한 순간에 깨어졌다.

이것은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서구침탈과 함께 서양이 만들어낸 서사(문화)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들여짐으로서 서양은 우리(동양)보다 우월하다는 오리엔탈리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여전하여 학문과 사상은 물론, 일상에서도 어떤 일에 예를 들어 설명 할 때면, 거의 대부분 서양의 사건이나 역사가 인용된다.

2021년 현재 세계인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 부러워하고, 아예 한국에서 살겠다며 생활터전을 옮겨오는 것은 물론 한국의 노래패, 한국의 연속극, 한국의 영화, 한국의 음식 등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마당에도 문화의 바탕이자 뿌리인 말은 여전히 외래어에 잠식당하고 있으니 당시에는 오죽했으랴.

문화 (임의적으로 가공된) 가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 가의 좋은 예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사무라이정신과 일본도(日本刀)이다. 일본의 자부심인 유도는 사무라이와 일본도에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일본은 쇠를 다루는 기술이 조선에 비해 형편이 없었던 관계로 지금까지도 전통방식으로 제작되는 일본도는 우리 조선의 환도(環刀)와 부딪치면 부러지거나 휘어져서 사용불가능의 상태가 된다.

그래서 사무라이들은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한 개 이상의 칼을 차고 다녔고, 모든 싸움은 칼이 아닌 육박전의 단도에서 결정이 난다. 일본의 전통무술을 눈여겨보면 칼과 창으로 서로 겨누다가 틈을 찾는 동시에 육박전으로 전환하여 단도를 이용해 갑옷사이를 찌르는 형식이며, 유도는 이러한 육박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술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가차원의 왜곡과 광고 덕분에 일본도는 날아오는 총알도 반으로 자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칼이라는 이미지가 세계화 되었다. 이에 대해 실험이 있었고, 스테이크를 자르는 식사용 칼에도 총알이 반으로 갈라지는 반면, 일본도는 콜라병을 후려쳐도 휘어져 버리는 충격적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일본도에 대한 명품의 이미지는 오랫동안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는 뭘까. 일본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공개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비록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남들 앞에서는 웃음과 친절로 대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인들의 행동 뒤에는 끔찍한 역사가 있다. 한때 사무라이들은 부녀자를 마음대로 겁탈했고, 비위에 거슬리는 일반인들을 가차 없이 죽여도 면책을 받았으며, 정면대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기습을 선호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인들의 웃음과 친절은 살아남기 위한 억지 가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군주를 위해서 할복으로 충성심을 나타낸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하사받은 농지와 특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에 불과하다는 게 정설이다. 그것은 자신이 섬기는 군주보다 힘 있는 군주가 나타나면 목숨 걸고 싸우기보다는 주군을 바꾸는 배신이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은 자신들의 문화를 철저히 왜곡한 가상의 이미지를 세계화 시켜온 반면, 식민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들은 선진국이 되었음에도 우리문화의 깊이와 역량에 관심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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