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2022년 대통령 선거를 100일 앞두고 있는 현재,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판세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엇비슷하거나 우파 쪽이 약간 우세한 상태다. 그런데 유독 40대에서는 우파가 맥을 못 추고 있다.

보수 후보는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전 세대에 걸쳐 힘겹게 겨우 얻은 지지율을 40대에서 전부 반납해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로 거부당하고 있다. 그 세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거다 할 정도로 딱 떨어지는 이론은 아직 본 적이 없다.

한 때고등학생들이 대우를 받던 시대가 있었다. 고등교육이 아주 드물던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의 40대가 중·고등학생이었을 때 이야기다. 그 때 고등학생을 고딩이라고 했다. 고딩이 대우를 받았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펄쩍 뛰겠지만 사실이다. ‘고딩이라는 용어는 피시통신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1990년대 중후반 피시통신은 고딩이 지배하는 가상 세계였다. 그 앞 세대들은 컴퓨터를 접해보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가 처음 나왔을 때, 아이들 반응은 이제 어른들도 컴퓨터를 할 수 있겠네.” 였다. 하지만 그 후로도 인터넷이 보편화 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피시통신이 인터넷이었다.

30대였던 내가 90년대에 컴퓨터를 처음 구입하고 피시통신을 시도했을 때, 진입부터 거대한 성역과 맞닥뜨린 느낌이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를 차례로 옮겨가면서 컴퓨터와 친해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할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은 컴퓨터를 잘하는 고등학생이었다.

통신에 접속되면 컴퓨터 기초를 배울 수 있게 만들어진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었다. 피시통신은 도스형태였기 때문에 마우스로 클릭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어를 사용한다. 커뮤니티에 접속하여 사용법을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질문으로 접속하면 고딩이 나타나서 도와주는데 엄청난 타자 속도에 감탄만 할 뿐,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빠져나온다. 그렇게 컴퓨터 기초를 배우려고 몰려든 30대들이 한 곳에 모여들었고, 그것이 ‘30대 초보방줄여서 ‘3초방이었다.

한편 피시통신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곳은 역시 대화방이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대화를 하니 글자가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대신 안냐세여’, 반갑습니다는 방가방가’, 고등학생은 고등어였다가 고딩으로 더 줄었다. 고딩 때문에 대학생은 졸지에 대딩이 되었고.

40대가 반보수가 된 까닭에는 초창기 전교조 교사들의 열정도 큰 몫을 차지한다. 1987년 즈음 전교조가 형성되고, 90년대를 지나는 동안 그들의 열성은 정말 대단했다. 그들의 노력에 의해 학교 교육의 지표부터 한국역사의 인식이 오늘날에 와서 천양지차로 달라졌다.

열정을 다하는 교사들로부터 근현대사를 새롭게 배우고, 컴퓨터라는 새로운 세계를 누비는 당시 고등학생들에게 보수적 가치는 크게 흔들렸다. 피시통신 마다 소위 플라자같은 정치 게시판이 있었다.

논객이라 자처하는 열혈 청년들이 게시판에서 서로의 목청을 높여댔다. 당연히 보수논객들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진보논객 진중권은 그 시절에 이미 스타였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시리즈도 피시통신에서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보수성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하이텔을 버리고 나우누리로 이동했다.

끝으로 그 시절 중·고등학생에게 보수가 결정타를 날린 것은 IMF 사태와 김영삼 대통령의 무능이었다. 어린 나이에 나라가 부도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목격했으니, 그 충격은 엄청났던 것이다.

그 시절 고3 학생들이 서울대학교에 입시를 치를 때, 후배들이 서울대 정문에다 이런 플래카드를 걸어 응원했다. “김영삼도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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