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의 인문학 탐구 <1>

 

김진문/시인
김진문/시인

울진사람이란 누구인가? 울진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정체성(正體性, identity)존재의 본질 또는 이를 규명하는 성질을 말한다. 필자의 생각에 역사적으로 울진사람의 정체성은 의리정신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의리정신을 전통적으로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의리정신을 발현한 구체적 표상물로 충··열 비각을 들 수 있다. 울진에는 그 개수가 70여 개로 전국 수위를 다툰다. 여기에는 여러 설화가 전해온다. 우리가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은 의병장 주호장군과 열녀 장씨 설화이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지역과 국가를 목숨 바쳐 수호했기에 정려기로서 인문학적 가치가 높다. 왜냐하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 순국한 의병과 열녀는 많지만, 남편은 왜군과 항전 중 전사하고, 아내는 왜군의 성적 모욕에 항거하여 자결한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울진읍 고산성(古山城)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주호 장군이 이끌던 의병과 주민들이 처절하게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순국한 역사적 현장이다. 설화에 따르면 산성 내 골짜기 시냇물이 순국한 이들의 피로 온통 붉게 물들었다고 전해온다. 지금도 주민들은 이곳 성터를 피골이라고 한다.

 

한편 부인 장씨는 주호장군의 시신을 껴안고 울부짖다 혼절했다. 이를 본 왜군이 부인을 겁탈하려 하자 온몸으로 항거하고, 더럽혀진 유방을 칼로 잘라 던졌다. 그리곤 짐승 같은 놈들이라 꾸짖으며 순절했다. 왜군들이 놀라 그 정절에 탄복해 푯말을 적어두고 갔다고 전한다. 전란 후 조정에서는 영인(令人)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부인의 죽음을 기려 열녀각을 세웠다. 비각은 현재 화성리 매눈(매니)에 있다. 우리는 이 애틋하고 슬픈 설화를 내재한 역사적 인물을 현재적 가치로서 어떻게 승화시켜야 할까? 그것은 고산성 설화를 스토리텔링화하여 후세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전하는 것이 먼저요, 이를 바탕으로 각종 예술작품 등으로 발전시켜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좋은 본보기로 11세기 영국의 설화 고다이버 부인 이야기'Lady Godiva Story'가 있다.

 

11세기 영국의 코벤트리라는 지방에 포악한 영주 레오프릭이 있었다. 그는 혹독한 세금으로 주민들을 수탈하자 원성이 높았다. 영주의 부인 고다이버는 남편에게 주민의 세금을 감면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영주는 당신이 발가벗은 채로 마을 한 바퀴를 돌면 요청을 들어주겠다고제안했다. 그 말을 들은 고디바는 진짜 벌거벗은 채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의 고운 마음에 탄복한 마을 주민들은 그가 나체로 마을을 도는 동안 모두 창을 닫고 커튼을 친 채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부인의 행동에 경의를 표한 것. 하지만 동네 사람들의 약속을 깨고 몰래 훔쳐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양복쟁이 청년 톰이었다. 이 청년은 후일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것과 몰매를 맞아 눈이 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한다. 이후 피핑톰(Peeping Tom)은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가 됐다고 한다.

 

고벤트리시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고다이버 축제를 창의적으로 발전시켰다. 이 축제는 영국의 대표 축제 중 하나가 되었고, 축제 때 한 무리의 시민들이 고다이버의 모습으로 시가행진을 한다. 다른 시민들은 창문을 열고 관람하여 피핑톰이 된다고 한다. 이후 도시의 광장에는 고다이버 동상이 건립되었고, 미술, 문학, 연극, 영화, 뮤지컬 등 예술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심지어 고다이버맥주고디바라는 초콜릿도 상품화하여 성공하였다. 한 토막 설화가 그 지역을 살린 국제적 축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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