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문의 인문학 탐구<2>

 
김진문(시인,논설위원)

주말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이 지난해 1211() KBS에서 첫 방영 되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16장영실이후, 5년 만에 부활한 인물 대하사극이다. 필자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지라 흥미롭게 첫 방송을 시청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방원(李芳遠, 13671422)은 아버지 이성계를 보필해 고려를 멸망시킨 인물이다. 그의 야심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이방원은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에서 승리해 왕위에 올랐고, 권력 강화에 걸림이 되는 형제, 처가를 비롯한 외척세력, 개국공신 등을 무자비하게 제거하여 국권을 장악하였다. 그는 재위 중 창업 군주()와 수성 군주() 모두를 칭할 만큼 문물제도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을 이룩함으로써, 아들인 세종 성세의 토대를 닦은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이방원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과 재능으로 학문을 가까이하여 이성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이방원이 청소년 시절, 글공부 선생은 다름 아닌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와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 1330?)이었다. 훗날 왕위에 오른 이방원이 포은의 마음을 떠보려고 읊은 단심가(丹心歌)하여가(何如歌)는 지금도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유명한 시조이다.

운곡 원천석 선생은 고려말 어지러운 정세를 개탄하면서 원주 치악산에 들어가 일생을 마친 선비였다. 일찍이 이방원이 왕으로 즉위한 후 옛 스승을 모시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챈 운곡은 산속으로 피했다고 전해온다. 끝내 조선왕조에 출사하지 않은 것은 고려를 향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심 때문일 것이다.

당시 운곡 선생은 어지러운 정국을 떠나 한때 동해안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는 울진에도 들러 6편의 시를 남겼다. 평해망사정, 월송정, 영희정, 울진에서 묵으며, 임의정 시를 차운하다, 지현에 올라 울릉을 바라보며라는 시이다. 그중 1편만 소개한다. 한자 원문은 생략한다. 그는 울진객사에서 달을 바라보며 기울어져 가는 고려왕조에 대한 심경을 읊었다.

울진에서 묵으며(宿蔚珍, 號仙槎)

아침에 기성현 푸른 바다를 떠나/석양에 취운루(翠雲樓)를 거쳐 왔네/한밤에 선사현의 달을 보고 읊으니/나그네 길 끝없는 시름 이제야 풀리네

 

여기에 나오는 취운루가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안축(安軸,12871348)의 관동별곡<경기체가>翠雲樓 越松亭 十里靑松(취운루와 월송정에는 십리 뻗은 푸른 소나무들)이란 시구로 보아, 원천석이 거쳐 왔던 취운루는 현재 평해읍사무소 또는 평해향교 부근에 있었던 건물로 추정된다.

고려왕조가 멸망하자 운곡선생은 산중으로 자취를 감추었고, 이방원에 맞선 정몽주는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한때 스승과 제자였던 이들은 역사의 변곡점에서 끝내 서로 멀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 사제 간의 인륜조차 갈라친 비정한 정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권력 쟁취를 위해 눈물도 피도 없는 인물이 바로 이방원 같은 유형이다. 글쎄, 권력을 향한 인간 군상들의 치열한 양태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어 흥미롭다. 다음번 방송이 기대된다.

 

김진문/시인

 

 

평해향교... 1357(고려 공민왕 6)에 건립됨.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60)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