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룡 칼럼>

 

임 명 룡 서울지사장
임 명 룡 서울지사장

지난 설날 아침 뉴스포털 메인화면에는 2가지 장면이 떴다. 한쪽은 여행객으로 붐비는 공항, 또 한쪽은 가족들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이다. 명절 때마다 보게 되는 풍경이라 우리에게 익숙한지 이미 오래다. 내용은 보나마나 뻔해서 자세히 보지 않고 닫기를 클릭 하려는데, 추천수가 압도적인 댓글이 눈에 띄어 읽어보니 가히 충격이다. “조상 덕분에 잘 먹고 잘 사는 집들은 명절연휴에 해외여행 가고, 조상에게서 아무것도 받은 것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지내고 명절 끝나면 부부싸움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3, 경남 진주에서 매우 특이한 사회운동이 펼쳐졌다. 백정(白丁)들이 형평사(衡平社)라는 단체를 만들고 신분 해방과 평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것이다. 알다시피 백정은 소나 개, 돼지 따위를 잡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 과거 우리 역사에서 수백 년 동안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던 천한 신분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해 법제상으로는 천민에서 해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차별이 그대로 존속되고 있었다. 백정의 호적에는 도한(屠漢)이라는 표시와 붉은 줄이 그어졌다. ‘호적에 빨간 줄이라는 표현이 거기서 비롯했다고도 한다. 형평사 통계에 의하면, 당시 백정 또는 관련업에 종사하는 인원은 약 40만 명이었다. 이들이 단체를 결성하여 조선총독부에 차별금지를 촉구했던 것이다. 그들이 총독부에 제출한 요구서에는 백정도 4대 조상 제사를 모시게 해 달라는 조항도 있었다.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백정이라는 천한 굴레뿐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4대 조상까지 제사를 모시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지난 백 년 동안 제사에 대한 시각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라졌다. 그 중간쯤에 해당하는 1970년대, 국가에서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여 제사를 비롯한 각종 의례에서 허례허식을 줄이고자 한 적이 있었다. 복잡하고 화려한 상차림 대신 간소화 된 제사상을 표본으로 제시하여 일반 국민들도 따를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때 제시된 최소한의 상차림도 지금은 지키는 가정이 거의 없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그마저도 허례허식이다. 줄이고 또 줄다보면 결국 사라지는 것이 세상만사다. 제사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제사가 없어지고 있는 마당인데, 아직도 명절이면 제사상 차리는 법이나 지방 쓰는 법따위의 콘텐츠가 인터넷에 난무하고 있고, 모르면 무식한 사람 취급을 한다. 알고 보면 이런 요식행위야말로 허례고 허식이어서 오히려 제사를 멀리하게 만든다.

원래 제사는 지극히 현실을 바탕에 두고 있었다. 공자(孔子)는 제사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제사를 지낼 때는 고인이 계신 것 같이 하라[祭神如神在]”고 했다. 근래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 수백 년이나 묵은 형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고인의 사진은 물론 동영상까지 있는데, 지방쓰기를 배워야 할 이유가 없다. 고인을 닮은 아이[尸童; 시동]를 제상 앞에 앉혀 고인이 있는 것처럼 제사 지내던 풍습이 훗날 위패나 지방으로 바뀐 것이다. 신위(神位)는 말 그대로 신이 앉는 자리다. 이미 고인의 사진을 모셔두고 또 지방을 써서 붙이는 것은 고인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학생명찰[學生府君]을 다는 격이다.

제사상으로 규정된 상차림도 마찬가지다. 진설법이라 하여 복잡한 것 같지만 일반적인 한정식의 순서를 형식화 했을 뿐이다. ()과 국() 그리고 술잔이 중앙에 놓이고, 고기와 나물을 차례대로 배치한 것이다. 식사를 마칠 자리에 식혜나 음료가 있고, 과일은 후식(디저트)이기 때문에 상 맨 끝에 차려진다. 시접거중 잔서초동 어동육서 홍동백서 등은 디테일이다. 이왕이면 보기 좋고 먹기 편하게 차리라는 소리다.

또 옛날에 4대조까지 제사를 모셨던 이유는 조혼을 했기 때문이다. 열서너 살이면 혼인을 하고 15세면 아들이 있었다. 환갑이면 고손(高孫)까지 보는 경우도 흔했다. 4대조 제사는 자신에게 보살핌을 준 분들께 드리는 보답의 예다.

어쩌면 제사라는 말은 앞으로 사라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낳고 기른 분을 기리고 추모하는 원칙적 기능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제사의 본래 의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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