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칼럼/초가삼간의 행복 40

옛날 어느 마을에 가세는 그리 넉넉지 못하지만, 부모 잃은 어린 조카를 자기 자식과 차별없이 정성껏 돌보는 선비가 있었다고 한다. 그 소문은 고을에 널리 퍼졌고 많은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지만, 선비는 언제나 부족하고 부끄럽다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어느 날 마음을 나누는 속 깊은 친구에게 고백하기를 마을사람들이 말하듯 조카를 내 자식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키우는 것은 분명하네, 평소에는 마음 어느 구석에서도 차별을 찾아 볼 수 없다네, 그런데 내 자식이 아프면 밤에 잠이 오지 않지만, 조카가 아프면 아무리 참아도 잠이 들고 만다네, 그것이 부끄러워 돌아가신 형님을 볼 면목이 없다네.” 하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한다.

지난 34일 오후 뉴스에서 울진산불 소식을 접했다. 울진군 북면이라는 단어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 밑바닥 무엇을 자극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화들짝 고향의 사건들을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부구중학교 동기들 밴드에 들어가 보았다. 아무런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고 있기에 별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시시각각 심각성을 알리는 뉴스 속보가 이어졌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그 기사를 밴드에 링크를 걸었더니 산발적이나마 하나 둘 상황들을 알려왔고, 몇몇 군데 전화를 걸어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했다.

고향을 지키던 어머니마저 떠나온, 빈집만 쓸쓸히 남아있는, 돌아갈 기약조차 없지만 건축물의 기초처럼 나의 심성 밑바닥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고향,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리움의 동의어가 되어 가고 있는 그곳, 강 건너 불구경이라 했던가! 심각성을 알면서도 무엇 하나 도움 줄 수 없는 마음만 안타까운 상황, 그렇다고 불끄기에 바쁘고 대피하기에 여념이 없을 고향 사람들에게 내 전화까지 보태어 급한 통신을 방해 할 수 없으니, 뉴스에 의존하여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밤늦게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여 고향으로 달려간 사촌동생을 통해 동네의 피해 상황을 전해 들었고, 빈집이지만 우리 집은 무사하고 숙모님을 비롯한 집안어른들도 별고 없다는 이기적 안도감 뒤로 밀려오는 안타까움은 수많은 사건을 대할 때 보다 무거웠다.

내가 속해있는 대한불교조계종은 금강경을 기본수행지침서로 삼고 있다. 경전은 식사시간에 맞추어 부처님께서 성()으로 들어가 차례로 밥을 빌어오는 것에부터 시작된다. 이 대목을 수행자는 매일 중생들을 만나야 하고, 그들의 사는 모습을 직접 보아야 하며, 그들과 함께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 후 시장을 돌며 탁발을 했고, 20년이 넘도록 소위 말하는 사회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수많은 사건현장에 함께 해왔다. 때로는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 말이다. 이번 산불은 나름 세속을 떠나 일체평등을 공부하는 수행자로서, 고향에 대해 특별한 애착이 일어나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아니면, 아직 끊지 못한 번뇌일까를 생각해보는 다소 엉뚱한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당장 달려가 집과 터전을 잃은 분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도와야겠지만, 현실적 여건이라는 부끄러운 핑계를 위안 삼으며, 속해있는 단체를 통해 불교계의 도움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나름의 방법으로 작은 힘을 보태었고 참여했다. 전국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피해복구를 위한 자금이 지원되고 있다는 소식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번 산불피해지역 이재민 숫자를 기준으로 어림잡아 보면, 울진 벽촌은 1가구당 1.5명의 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대책이 막막하지만 우려했던 지방소멸이 현실이 되고 있는 고향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찾아오길 빈다. 끝으로 피해를 당하신 고향 분들께 힘내시라는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진화에 애써주신 분들과 도움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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