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것이 네 가지가 있다. 늙은 홀아비, 홀어미, 부모 없는 아이, 자식 없는 늙은이, 이른바 환과고독(鰥寡孤獨)이다. 이 사궁(四窮)의 첫째와 둘째가 홀로된 노인이다. 노후의 말상대 없는 고독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열 효자가 한 악처만 못하다는 속담도 만만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부부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천수를 다하고, 앞뒤서거니 이승을 떠나는 부부는 축복받은 인생이다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소망이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것은 인간의 힘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가문이 좋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권세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재주로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것은 운명적인 것이어서 인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부부가 해로동혈(偕老同穴) 한다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해로하는 부부는 선택받은 인생이며, 그러한 노부부의 사랑은 값진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부부는 오래 같이 살아갈수록 서로를 잘 알게 되어 사랑의 농도가 깊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정성으로 다듬어 만든 아름다운 예술품과 같이 귀한 것이다. 젊은이의 모험이 깃들고, 가능성만을 믿는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사랑을 에로스적이라고 한다면, 노부부의 사랑은 아가페적이라고 한다.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젊은이들만이 가지는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노부부의 사랑이다. 그것은 젊은 날의 질풍노도와 같은 과정을 다 여과하여 이루어진 숭고한 경지에 이른 완성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날수록 고독하게 노후를 보내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오래 사는 것은 좋지만,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부부가 함께라면 이런 걱정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노부부가 손을 잡고 낙엽을 밝으며 가로수 길을 산책하는 것을 보면 경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모습이야말로 순수한, 승화된 사랑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의 역경에서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인생의 승리자다. 그들이 앞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만큼의 한 일이 없고, 뒤에 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험난한 세상에서 백년해로를 해 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의 가정의례에서 회혼례를 으뜸가는 경사로 축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튼, 부부가 함께 늙어 가는데 집안이 화락하고, 경제적인 여유와 사회적인 명예까지 누릴 수 있다면,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사회적으로 대성을 해서 명성을 떨쳤다고 하더라도, 부부해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위대한 사람은 될지 몰라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함께 뿌린 씨앗은 거둠도 함께 해야 기쁨이 크듯이, 인생의 수확도 반려자와 함께 성취해야 만족감이 클 것 아닌가?

허겁지겁 달려온 칠십을 넘긴 긴 세월을 성찰하면서, 내 삶의 끝자락을 단풍보다 더 곱고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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