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호길 원로장로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 옆에서 천자문을 따라 읽었다. “하늘 천 따지가마솥에 누룽지어쨌든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천자문부터 동몽선습을 거쳐 사서삼경에 이르기까지, 늘 그렇게 배웠다. 읽다보면 저절로 외우게 되고 뜻을 깨치게 된다. 그러니까 문리가 트인다.”는 말은 돈오(頓悟)와 점수(漸修)가 절묘하게 배합된 당대 교육의 특산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이 학창 시절 연습장에 영어 단어를 세차게 마구 써가면서 외우는 방식과는 한참 달랐다. 읽고 또 소리 내어 읽는다. 책장이 닳으면 새 종이로 배접하고 새 끈으로 묶는다.

그때는 책 읽는 그 소리가 창호지 구멍을 뚫고 나가, 마당을 가로질러 마침내 담장을 타고 넘는다. 이웃집 안채에서 그 소리를 기다리는 이가 있다. 따사한 봄볕 아래 한창 물오른 버드나무처럼,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도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나이의 고운 처자다.

그녀의 가슴은 매일 그맘때 쯤 들려오기 시작하는 청년 선비의 목소리에 차라리 멍이 들었다. 어느 정도 자란 뒤부터는 제대로 마주친 적조차 없지만, 담장을 타고 넘어오는 헌걸찬 목소리는 당당한 체구에 준수한 얼굴의 한 선비를 충분히 떠올린다. 그리고 그 무렵 하인은 마당에서 괜한 비질을 하면서 웅얼웅얼 선비의 목소리를 따라 읊는다. “하늘 천 따지에”, “가마솥에 누룽지”...

어쨌든 소리 내어 책을 읽던 시대는 지났다. 바쁜 생활 때문이다. 읽어야 할 책은 많은 데, 일일이 소리 내어 읽고 또 고개를 끄덕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앉아 있을 여유 같은 것은 없다. 그야말로 세월이 변하고 모든 게 다 정보가 되어 있으니,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옛날에는 책 한 권을 다 떼면 책씻이를 했다. 아이를 맡긴 부모가 선생님에 대한 보답으로 한턱을 내는 것이었다. 책씻이 때 대접하는 음식으로는 국수, 경단, 송편이 있는데 특히 팥이나, , 깨 따위의 소를 넣은 송편은 학동의 문리가 그렇게 뚫리라는 뜻에서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일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책 한 권 읽었다고 아이나 학원 선생님에게 대접을 해주다보면 집안 들보가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옛 선비가 비록 한 권의 책만 일 년 내 읽고, 또 읽어도 앉아서 천리를 볼 수 있었다면, 나는 두 권, 열 권의 책을 읽고, 게다가 인터넷까지 돌아다니며 무수한 정보를 사냥했어도 한 뼘 앞의 일조차 알지 못한다.

어쨌든 책은 많이 읽을 수밖에 없고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좋을 것이다. 게다가 답답한 아파트 골방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어봐야 대개 김만 빠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끔은 봄비가 촉촉이 내리거나, 낮잠 한 잠 잘 자고 일어난 어느 휴일 오후 같은 때, 좋은 시집 한 권을 골라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은 어떨는지.

책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란 말이 있다. 살다보니 70을 넘겼고 뒤돌아보니, 내가 읽은 책들이 나의 삶의 지로(指路)가 되었고, 내가 걸어가는 나그네 여정에서 등불이 되었다.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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