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옹야(雍也)편에 이런 글이 있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智者動 仁者靜 智者樂 仁者壽

예전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내용이니 한문을 잘 모르는 분들도 무슨 뜻인지 대강은 알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활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안정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로 풀이할 수 있다.

80년대 논어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은 저 문장을 설명하면서 지혜로운 사람[知者]과 어진 사람[仁者]을 각각 일본인과 한국인에 대입하여 풀이하셨다. 선문(禪文) 수준의 추상적인 문장을 학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자니, 단순 비유를 들었겠지만, 그럼에도 비유의 적절성에 놀라웠던 경험은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 일본은 압도적 차이로 세계 2위 경제대국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름 지혜롭다고 할 수 있고, 우리가 어진 사람이라는 것은 만고의 진리로 여겼다. 결정적으로 우리는 산을 좋아[樂山]하고, 일본은 물을 좋아[樂山]한다는 점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한국 사람들은 산을 등지고 산자락에 올망졸망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일본마을은 강 하구 평지에 형성되어 가정집 바로 옆에 수로(水路)가 흐른다. 지금도 일본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수로는 예전에 작은 배들이 택시처럼 오가는 교통로였다. 우리의 정주형(定住型) 생활방식과 달리 그만큼 활동적이란 말도 된다. 이처럼 두 나라는 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일본 토쿄[江戶; 에도]는 강과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도시다. 양쪽 끝을 오가는 데 차로 3시간이 걸린다는 거대한 도시가 17세기 중반에 바다를 메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전통적인 사고(思考)에는 인위로 자연을 변화시킨다는 관념이 없었다. 그것을 우리는 물아일체(物我一體)니 관조적 자연관이니 포장하지만 물을 다스릴 능력이 없었다. 18세기 중반(1760) 서울 청계천 바닥에 깔린 토사를 걷어내는 작업, 즉 경진(庚辰)년 준천이 치수(治水)의 최대 국책사업이었다.

한강은 다스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홍수가 날 때마다 물줄기는 바뀌었고 강의 모양새도 달라졌다. 여의도는 유량에 따라 수시로 잠겼고, 그밖에 밤섬이나 노들섬은 물이 빠지면 여의도와 하나로 붙어 있어 뭍에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니, 지금으로선 그 시절 풍광은 가늠조차 어렵다. 또 지금 강남의 최고 중심인 잠실일대는 원래 강북과 붙어 있었다. 조선후기 홍수에 북측에도 샛강[新川]이 생기는 바람에 잠실섬[蠶室島]이 되었다가, 1970년대 샛강을 한강본류로 만들고 송파 쪽 강을 매립하면서 강남에 흡수된 것이다. 롯데타워가 있는 석촌호수는 매립과정에서 남게 된 자연호수다.

일제강점기는 치수에 의해 한반도 지형이 달라지기도 했다. 여의도는 제방을 쌓아올려 알짜배기 육지가 되었다. 바퀴처럼 생긴 제방을 따라 윤중로(輪中路)가 건설되고 벚나무가 늘어섰다. 강 건너 대규모 저지대를 메워 영등포 공단이 건설되었다.

무엇보다 일제의 치수는 호남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그 전에는 산을 좋아[樂山]하는 민족답게 호남의 도심도 산자락에 있었다. 목포, 여수 등 평지에 새롭게 형성된 신도심은 치수의 결과였다. 지금 나주시는 완전히 내륙도시지만 1915년에 등대가 건설 될 정도로 옛날에는 배가 들락거리는 항구였다. 그만큼 호남 땅은 바닷물과 갯벌이 내륙 깊숙이 들어왔던 것이다.

일제는 금강과 만경강에 제방을 쌓고 하구 갯벌을 매워 거대한 평야를 만들었다. 김제와 군산은 그때 만들어진 신도시다. 원래 군산(群山)’은 고군산군도였다. 만경강 하구에 매립된 땅이 워낙 넓어 행정구역 이름이 광활면이다. 수많은 공사와 넓어진 땅 덕분에 전라도는 1928년 경상도를 재치고 전국에서 인구 1위가 된다. 그러다 6.25전쟁을 거쳐 점차 인구가 서울로 유입되었고, 1959년 다시 경상도에 1위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지난 8일 서울이 침수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가 물에 잠기어 바로 이웃 동네에서 일가족이 숨지는 충격을 목도하면서 비참한 심경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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