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칼럼/ 초가삼간의 행복 44
우리말에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고 우연히 만나서 함께 사는 남녀’를 일컫는 ‘뜨게부부’라는 단어가 있다. ‘뜨게’라는 말은 ‘옷감을 잘라 본을 뜨다’와 같이 ‘흉내 내어 그와 똑 같이 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뜨게부부’는 ‘부부 흉내를 내며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녀 간의 일은 둘 밖에 모른다 하듯이 살다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혼인신고라는 법적절차를 마쳤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뜨게부부’라 하여 결혼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연히 라는 말에서 보듯이 남들이 보는 눈과는 상관없이 본인들 스스로도 사회문화적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부담감을 안고 사는 게 현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통과의례라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온전한 자격을 갖추게 되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통과의례는 작명례, 백일, 돌, 관례(성인식), 결혼, 회갑, 상례 등이며, 현재 행해지는 통과의례는 형식은 있지만 본질은 사라졌다고 본다. 이것은 가정교육은 물론, 공동체의 결속이 느슨해 졌음을 말하고, 그만큼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데 기인한다고 본다.
가가예문(家家禮文)이라 하여 남의 집안 예(禮)를 따지지 않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요즘은 뉘 집 할 것 없이 결혼식은 이미 중구난방 난장판이 되어버렸고, 돌아가신 부모를 모시는데 있어서도 아무런 의미도 절차도 모르고 그저 상조회 직원이 절하라면 하고, 일어서라면 서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통과의례라는 측면에서는 우리사회 전체가 상놈이라는 말을 들어도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의례는 의미에 따른 형식과 절차이다. 집집마다 형식과 절차는 다를 지라도 거기에 담기는 의미는 합당해야 하며, 당사자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미 보다는 형식과 절차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니, 번거로운 일이거나 아예 근본 없이 행해지기도 한다. 여름날 바닷가 어느 분의 “팬티에 비키니를 입고, 동네 한 가운데를 밤낮없이 쏘다니면 어떡하나!” 라는 충고는, 통과의례의 불일치에 대한 지적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석 달째 되는 달의 그믐날에 이름을 지어 조상님께 알리는 작명례를 한다. 그래서 이름에는 조상과 자손을 이어주는 혈통의 대물림이 근본이 된다. 다음은 어머니 몸에 입태 된 날로부터 1년, 즉 생명체로서 첫 번째 맞이하는 백일이 생일이자 돌이다. 돌이 되면 스스로 걸어 나가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어느덧 장성하면 관례를 통해 어른이 된다. 이때부터는 사회적 규범이 엄격히 적용되고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특히 요즘처럼 만혼(晩婚)이 대세이고, 독신을 고집하는 사회에서는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해 주는 의례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부활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었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 두 집안이 혈연이 아닌 사돈이라는 관계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 집안이 하나가 되었음을 널리 알리고, 며느리를 집안의 대를 이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의미에 초점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