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송정과 활 터"

 

우리나라 정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대체로 대중들에게는 쉼터 구실을 하였고, 시인 묵객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를 읊으며 글과 그림으로 작품을 남기는 예술적 장소였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도 그랬다. 월송정은 바닷가 솔숲에 싸여 둘레의 풍광이 아름답다. 이 수려한 풍광 덕분에 예로부터 대중의 풍류와 함께 시인 묵객의 예술적 기능을 했다. 이는 월송정에 게시된 시문 현판이 말해주고, 옛 문헌에도 시인과 화가의 작품이 전해온다. 하지만 우리는 월송정 안내판에도 간략히 소개해놓았듯이 그 공간 일부가 조선조에는 사정(射亭:활터)의 기능을 했다는 것에 지금까지 그렇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최근 국궁신문대표인 이건호씨가 조선 시대 가장 아름다운 활터, 월송정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나라 국궁연구나 울진 향토사 측면에서 색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소개한다. 저자는 월송정이 조선조에 활터였다는 사실을 옛 문헌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조선성종 때 화공에게 시켜 팔도의 활터에 세운 정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그려서 올리도록 했다. 오직 영흥의 용흥각과 월송정이 뽑혔는데, 사람들은 어느 것이 나은지 쉽게 가리지 못했다. 월송정이 으뜸이 된다고 했다. (여지도서, 평해읍지) , 솔숲 남쪽은 곧 만호포의 성루로 누각이 분곡(粉鵠)과 마주하여 있다. (이산해, 아계유고), 분곡은 하얀 과녁을 의미한다. 동쪽 바다를 바라보며 활을 쏘기에 좋으니 관동팔경 중의 하나이다(권섭, 유행록), 일제강점기 193686일 자, 매일신보는 월송정이 조선 시대 가장 아름다운 활터로 뽑혔다라는 조선 성종조 화공의 이야기를 기사로 보도하면서 사정터로서 기능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월송정 활터를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의 금강사군첩-해동명산도, 송암의 관동팔경도, 작자 미상의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인 8폭 병풍도에는 월송정 풍광과 함께 과녁이 그려져 있다. 더구나 그 과녁 그림의 상단과 하단에 괘(,)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는 이 논문을 통해서 월송정이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활터로서 무예를 수련하는 인격도야와 국방의 기능도 함께 제공하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국궁은 우리 고유의 무예다. 옛 선인들은 예로부터 활쏘기를 군자가 지녀야 할 예와 덕을 수련하는 심신의 벗으로 삼았다. 활쏘기가 인격도야의 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푸른 솔숲과 단아한 정자가 있는 월송정에서 망망대해를 과녁으로 삼아 중석몰촉(中石沒鏃)의 정신으로 활시위를 한번 당겨봄직도 하다.

푸른 파도와 함께 나르는 꽃 화살!

조선 시대 가장 아름다운 활터, 월송정의 옛 모습을 재현하는 것도 월송정 풍광을 살리는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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