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던히, 의미 있는 삶을 찾아"

 

울진중앙교회 박호길 원로장로
울진중앙교회 박호길 원로장로

나는 종종 창밖을 내다보기를 좋아한다.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면, 창밖의 세상은 얼마나 크고 환하고 경이로운지... 
창을 열면, 넓은 운동장에 무수히 찍힌 발자국과도 같은 수 많은 시간속의 나를 만난다. 바람 속에 흔들리는 나, 하늘 높이 풍선처럼 떠오르는 나, 이 세상 어디로든지 날아갈 수도 있고, 그리운 사람들은 언제라도 내 곁에 불러 모을 수도 있다. 공기처럼 가벼워진 내가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도 있다. 


내가 투명하니 맑은 창문이 있어 내 눈과 귀가 크고, 맑고 환하게 열린 초가을의 이 감정은 깊은 감격에 빠지게 한다. 쓸쓸해져 가는 가을의 문턱에 서서 붉게 물들어 가는 잎들은 낙엽이 질 준비를 서두르는 듯 어설프게 보여진다. 


한 낮에 창밖을 내다보니, 나무 밑에 떨어져 쌓인 잎들이 소복이 모여 속삭인다. 온종일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저녁노을이 질 때면, 서로 부둥켜 앉는 것만 같다. 힘없이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노라면, 인생도 수목(樹木)도 모두 건강을 잃어만 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언제나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주워서 책갈피 일기장에 넣어두던 일과 봄이 오면 화단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던 일, 여름이 되면 나무 그늘을 찾아 땀을 식히던 일, 겨울이 되면 입고 또 입고 추위를 이겨낸 일들이 이 가을에 모두 생각난다. 
40년 전 그날도 가을의 문턱이었다. 젊은 시절에 누렇게 익은 벼 이삭을 스치면서 논길, 언덕길, 오솔길을 걸어 다니던 일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는다. 오늘 이 한순간에 그때의 작은 생각들이 밀물처럼 내 머리를 스쳐간다. 


오랜 직장생활에 무슨 추억이 없으랴! 그 긴 세월 춘하추동, 풍우설한을 다 이겨낸 날…. 오늘도 겨울을 향해 치닫는 쌀쌀한 날씨가 출근길에 손끝을 시리고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그러나 나의 일터는 한결같이 흐르는 강물처럼 출렁거리는 파도를 헤쳐 나가면서, 고된 이 길이 보람과 숭고한 길이기에 열심히 노를 저어왔다. 


나는 창가에서 안개같이 피어오르는 어제의 일들과 마음에 비추어주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가족과 직업을 함께 짊어지고, 무겁게 걸어가는 이 조심스러운 길에서 지금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어려운 길일수록 진실(眞實)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며, 빈곤한 철학으로는 고달프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랑이 없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길이라고 느낀다. 


한순간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며, 앞으로 더 많이 부딪힐 것이 무엇인가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자신을 더욱 소중히 관리하고 가족 속에 있는 자신을 한 번 더 의식(意識)해 보고 싶다. 나는 이 모든 속에 파묻혀 살더라도 의미(意味)있는 삶을 찾아 무던히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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