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동분 작가의 방

 

살다보면 ‘삶이 나를 멕이는구나’ 할 때가 있다. 
그래도 뚜벅뚜벅 길을 가다 보면 ‘이런 빛나는 순간도 오는구나’ 할 때도 있다. 후자의 순간이 더 많다면 죽여주겠지만, ‘삶은 이리 돌아가는구나’ 를 알고는 이런 ‘삶의 불평등한 순환’에 모든 것을 걸지 않게 되었다. 조용필 노래 말마따나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롭다’는 것을 덤으로 터득했다. 
그러니 어떤 삶의 파도와 맞닥뜨렸을 때 무너지는 것은 가까스로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개똥철학을 일찌감치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이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우리는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꿈 많던 청춘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대가리 터지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박완서 작가님은 어느 책에서 자신의 세대가 어중띤 세대라고 했다. 우리 말보다는 일본말이 더 쉬웠고, 책도 일본책이 더 쉽게 읽혀지도록 강요받으며 자란 세대라고....
그러나 정신적 과도기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의 끝자락 세대가 어중띤 세대가 아닐런지???


가난의 질곡을 묵묵히 지나 온 부모세대와 개인의 행복 추구에 가치를 둔 자식세대 사이의 이도저도 아닌 어중띤 세대!!
코흘리개 때는 다방구, 연날리기, 팽이치기, 달고나, 뽑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이 문화의 전부였던 세대, 이와 석회, 참빗을 세트로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 체하면 약을 먹기보다 어머니가 무명실로 손가락을 탱탱 감은 뒤 바늘로 따주셨던 세대, 치아가 흔들리면 이와 방문고리를 무명실로 연결한 후,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해결했던 세대....


우리 세대라고 사춘기가 없었을까?
우리는 부모 눈치채지 않게 알아서 사랑앓이를 하다 나자빠졌고, 몸과 마음의 이상현상을 알아서 감내했다.
믿는 구석이라고는 눈씻고 봐도 없었으므로 모든 것을 알아서 기었다. 
우리에게도 청춘이란 시기가 있었다. 청춘하고 발음하면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색이 떠올라야 하지만, 우리의 청춘은 그냥 고동색이었다. 꿈만 짱짱했다.
부모가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없는 돈에 머리에 먹물을 넣어주었으므로 집안을 위해 죽어도 무엇이 되어야만 했다. 
청춘의 에너지를 온통 이런 쪽에 탕진하느라 마음은 푸르지도(靑), 봄(春)처럼 달큰하지도 못했다. 

 

 

이 세대에게 수식어는 또 화려하다. ‘한강의 기적’, ‘산업화의 주인공’, 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쳐 97년 IMF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다 보니 정신은 기계충을 앓은 것처럼 여기저기 부스럼이 났다. 
우리 부모세대와는 달리 자식들을 사탕처럼 달콤하게, 부족함 없이 키웠지만 자식들이 부모 말을 들어주고 안들어 주고는 옵션이 되었다. 
우리 이전 세대는 ‘정년퇴직’이 당연시 되었지만, 재수 옴 붙게도 우리는 ‘명퇴’라는 철퇴를 맞은 첫 번째 세대다. 


그런 ‘골 빠지는’ 시간들을 지나다 보니 어느덧 정년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코앞에 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중띤 세대들의 현주소는 지나온 시간들을 자꾸 들춰 보며, 자신이 걸어 온 발자국마다에 연민과 아픔을 느낀다는 거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우연히 폴모리아 악단의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을 듣게 되었다. 이 음악은 우리 세대라면 다 아는 황인용씨가 진행했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시그널 음악이다. 이 음악을 듣는 내내 마음의 파장이 컸다. 
지금 이 세대는 이마빡에 흰띠 두르고 앞만 보고 내달린 ‘지나온 날들’에 대한 애틋함, 짠함이 크기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꿈 많던 젊은 날로부터 멀리 떠나와 있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날들에 대해 스스로 위로하는 중인 거다. 


우리네 일생을 모아보면 번쩍번쩍 광이 나는 순간은 기껏해 봤자 열 손가락을 채우기도 벅차다. 그러나 나머지 새털처럼 많은 날들은 어떤 삶이었을까.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우리 선수들끼리는 다 안다. 그 나머지 날들은 먹고 사는 일과 잡사에 시달리느라 소리소문 없이 지나갔음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듦을 인식하는 것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지나온 날들에 대한 충분한 자기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 다시 꿈을 리셋하고 이제부터는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길’을 당당히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중띤 세대들이여!!
이제는 우리 삶의 시간들을 아프지만 당당하게 걸어온 자신에게 거수경례를 하시길....
다름 아닌 당신이 영웅입니다. 
앞으로도 하루하루 불안정한 날들이 찾아오겠지만, 지금껏 단련된 힘으로 잘 건너시길 빕니다. 그리고 나머지 날들은 ‘당신을 위해’ 마음껏 광야를 달리시길 응원합니다. 

 


글쓴이 * 배동분은 서울에서 한국생산성본부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다가 2000년에 금강송면으로 귀농했다. <산골살이, 행복한 비움>과 <귀거래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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