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분 작가의 방 ②회

 

누구 말마따나 삶은 저글링(Juggling)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개의 공을 공중에 대고 끊임없이 굴리는 것이 삶인데, 그 공들 안에는 행복, 기쁨, 고통, 시련이 들어 있다. 
그러니 이번에 내 손에 잡힐 공이 행복인지, 고통인지 당최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공을 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래심줄보다 더 질기고 불덩어리 같은 고통의 공을 손에 쥐었다고 도로 물릴 수도 없다. 죽기 살기로 공을 돌려야 한다. 공을 멈추는 날은 그 삶이 끝장나는 것이므로... 
고통과 행복이 반반이어도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판국에 어째 고통의 공이 더 많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행복의 공을 쥐었을 때는 저 혼자서도 잘 놀지만,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 앞에서는 죽지 못해 사는 경우도 다반사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찾아오는 고통과 아픔에 이골이 날만도 하지만 매번 낯설고 버겁다. 한 번 당하고 나면 다음에는 이렇게 이겨내야지 벼르지만, 고통은 올 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쳐들어오니 연습도 말짱 황이다. 
어디서 읽었는데 낙타는 사막의 모진 모래가 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긴 속눈썹을 가졌고, 모래가 콧구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콧구멍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한다. 즉, 낙타도 모진 사막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데, 우리네는 방탄조끼 하나 없이 고통의 직격탄을 맞아야 한다.


결국 알아서 잘 이겨내야 하는데 고통을 희석시키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책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거나, 영화를 보거나, 죽기 살기로 산에 오르거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또한 사람에게서 위안과 용기를 얻는 등 그 방법은 다 다를 것이다.
많은 경우는 자신을 믿어주고 전적으로 응원해주는 사람을 만나 힘든 삭신과 영혼을 기댈 것이다. 지게와 지게 작대기처럼 누군가가 나의 영혼의 짐을 떠받쳐 주면, 또 다시 풀처럼 일어나 뚜벅뚜벅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함석헌 선생님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 라고 우리에게 묻는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읽고 나면 정수리가 뻐근해진다. 이 시를 옹알이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니, 전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그런 사이다.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 불리는 고흐는 37년 사는 동안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고 늘 고독했다.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궁핍하고 처참한 삶을 살았는지 두 말 하면 입 아플 것이다. 


고흐는 부모에게도 신뢰받지 못했고, 이 세상에서 전적으로 응원한 단 한 사람은 동생 테오였다. 동생 테오만이 유일한 지원자로, 고흐의 생활비며 그림을 그리는 데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감당했다. 뿐만 아니라, 형 고흐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며 끝까지 형의 재능을 믿고 응원해주었다.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고흐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37세로 형 고흐가 세상을 떠나고 6개월 뒤 동생 테오도 세상을 떠난다. 


세상에서 지게 작대기로서의 역할을 테오만큼 잘 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도 나를 믿어주고 용기주는 단 한 사람이 있기에 하루하루를 잘 인내하며 나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며 난 ‘그 사람’을 가졌는지 헤아려보려다 말고, 과연 난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되어 주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지게 작대기 역할을 해주고 있는 지 스스를 다그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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