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진학학원그룹 이영희 이사장

"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조상을 모시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소년이 서울에서 독학으로 공부하여 원생이 6,400명이나 되는 학원 사업자가 된 주인공은 서울 진학학원 이영희 이사장(이하 이사장)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집안이 융성하려면 비록 가난할지라도 아이에게는 꿈과 포부’를 가질 수 있도록 부모가 격려해주고 솔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릴 때 꿈과 목표는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이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이 느꼈던 바를 널리 알려주려는 글이다. 그리고 객지에서 생활하면서 선영의 산소관리나 조상 추모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친척 사이에 갈등을 겪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이사장 집안에서 개선한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다.

 

    진학학원그룹 이영희 이사장
    진학학원그룹 이영희 이사장

이사장은 온정면 금천리 두곡(두실)에서 태어나 금천초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의 작은 공장에 취업했으니 그때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열악한 공장 생활 속에서 독학으로 중등과정과 고등과정을 마쳤다. 정규과정은 초등학력이 전부였으나,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이 인정되어 현역병으로 입대, 최전방 GP에서 병장 만기로 전역했다. 그 후 30살에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졸업 후 투자신탁회사 기획부에 입사했으나, 2년 만에 그만두고 학원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보람과 희열을 잊을 수가 없어, 학원 사업을 ‘평생직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1992년 10월에 중학생 7명과 초등생 40명인 작은 속셈학원을 인수하여 시작한 학원은 15년 만에 학원생들이 약 6,400명으로 늘었다. <두곡동 아리랑> 책에는 사업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마치 한편의 멋진 드라마와 같이 재미있게 씌어 있다. 이사장은 사업으로 이룬 결실의 공유를 멋지게 실천한 사람이었다. 2008년에는 사업 초창기부터 15년 이상 함께 헌신해 온 원장들에게는 각자 맡아오던 학원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분리해주었다. 학원 발전에 가장 기여한 대표강사에겐 이사장 소유의 정상어학원에 지분을 투자하게 하고 어학원 운영을 맡겼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국가와 사회에도 많이 기여하였다. 장차 남북통일에 이바지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중국내 11개 조선족 학교에서 성적이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로 매년 100명씩 선발하여, 20년 동안 2,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또 북한의 공산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박상학의 자유북한운동연합 후원회장을 맡아, 5년 동안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인촌 김성수 선생의 명예 회복과 백선엽 장군 선양사업 그리고,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에 자발적으로 큰 돈을 헌납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유민주당’에 거액의 정치자금도 후원했으며, 이번 8.15에는 ‘민주화운동 동지회’ 발대식에 필요한 경비 전액을 후원했다. 이 조직은 초창기 순수 운동권 출신들의 모임인데, 반국가적인 586 종북주사파와 가짜 민주화 운동가 및 부패한 정치인들을 청소하기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물론 울진군청에 고향사랑 기부에도 앞장서 후원하였다.
  

 

  이사장의 부친은 한학에 밝아 서당을 하셨는데 어릴 때 선비이신 아버지의 삶을 사랑방에서 막내로서 생활하며 지켜본 것이 내적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이 몰락하여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했을지라도 독학으로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그가 생각하는 ‘조상을 추모하는 방법’과 ‘명당에 대한 관점’이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줄여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과 같은 제사 형식은 성리학이 조선에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신분에 따라 신위를 달리했는데, 왕은 4대 봉사가 원칙이었다. 1품 이상은 3대 봉사, 7품 이상은 2대 봉사였고, 일반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냈다. 갑오개혁(1894년)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자 너나없이 양반 흉내를 내는 바람에 전 국민이 4대 봉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신분제가 사라진 지금은 4대 봉사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1960년대 故 박정희 前대통령은 ‘가정의례준칙’을 통해 4대 봉사를 2대 봉사로 줄이고, 한식과 동지 제사를 없애고 추석과 설에만 지내게 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은 ‘대통령이 禮를 모른다.’면서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제사 간소화는 대세가 되었다.
  아무리 전통문화라 할지라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뀐 문화가 새로운 전통문화가 된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었고 부부(夫婦) 위주 맞벌이 시대이다. 그러니 시대에 맞게 제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핵심은 ‘제사 간소화’다. 예쁜 꽃을 준비하고 좋은 향(香)을 피운 후, 고인을 경건하게 추모한다면 훌륭한 제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현대 사회는 친척이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므로 부모의 기일제사(忌祭)는 각자의 집에서 추모하고, 조상님들은 백중 무렵 선영(先塋)을 벌초한 후에 함께 모여 묘제(墓祭)를 지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추석에는 나들이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므로 추석 연휴를 활용하여 가족과 여행으로 견문을 넓히고 직장에서 쌓인 피로도 풀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가 생각하는 명당론(明堂論)은 남다르다. 우리 선대들은 조상의 무덤을 ‘명당(明堂)’에 쓰려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고인의 편안함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후손이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그러나 이사장이 생각하는 명당은 땅에 있다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처신에 달려있다고 본다. 예컨대, 한글을 창제하고 애민정신을 실천한 세종대왕이나 호국정신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이순신 장군과 백선엽 장군은 조상으로서 훌륭한 명당이다. 이사장같이 교육사업에 종사하는 경우, 장학사업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시민으로서 성실납세를 실천하여 성실납세자가 된다거나, 사회나 이웃에 베푸는 삶이라면 그 또한 자신이 자손에게 훌륭한 명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에게 명당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곤 한다. 태어나는 것은 자신이 어찌할 도리가 없으나,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는 매 순간 자신이 내리는 선택에 달려있다. 

 

/임명룡 서울지사장 

  

 

※이 책을 읽어보기를 원하시는 분에게는 금년 9월 말일까지 ‘울진신문사’ 에 요청하시면, 무상으로 제공해 드립니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