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의 문화와 역사의 산증인 85세의 고령에도 현역
금년 가을 “제2회 울진 전국한시백일장” 유치`주관

임무승회장은 지금으로부터 85년전 심심 두메산골 근남면 구산리 굴구지에서 태어났다. 3남1녀 중 맏이로 4,5살때부터 한문을 수학한 그는 8살 때는 이미 주옥같은 시를 지어 사람들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약 40년전에는 울진군 한시백일장에서 “불영계곡” 이라는 제목의 한시를 지어 장원을 했다. 15살때부터 21살까지는 농사를 짓다가 왜군에 끌려가기도했다. 이어 해방 후 군청공무원을 시작으로 공보실장까지 올랐다가 사직하고 울진군 축협 초대~2대 조합장을 지냈다.

퇴임 후에는 성균관 전의와 대한유도회(儒道會) 총본부 상임위원을 역임했고, 75년도부터 지금까지 경북도 유도회 부회장을 16년째 수임하고 있다. 또 현재 충효예실천본부 고문, 경북도 유림한시회 전임(專任)부회장이자, 울진성류한시회 회장이다. 한편 거의 매일 울진군 문화원에 들러 울진의 문화와 울진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울진문화`역사의 산증인이기도하다.

그는 농사를 지으며 살았지만, 증조부, 조부, 선고께서 한학자로서의 명망이 높았던  집안의 자손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8살 때 중국의 역사를 적은 통감 [通鑑] 15권 중 8권째를 읽던 중이었다. 부친(故 임선우)의 스승이 방문하여 鰥(홀아비 환)자를 운으로 한 수 지어보라는 말을 듣고, 春日偶吟 (춘일우음)의 7언 절구를 지었다.

“春來燕客新尋主(춘래연객신심주)/ 花發蝶郞互免鰥(화발접랑호면환)...... 봄이 오니 제비 손님은 서로 주인을 찾고, 꽃이 피니 나비신랑은 서로 면환하더라!” 는 8살 아이의 뛰어난 작시 솜씨에 부친의 스승은 그만 탄복을 하고 말았다한다. 그는 현재까지도 그 시를 외우고 있다. 한시는 옛날 선비들의 노래였다. 글자마다 고저장단의 운율이 있다. 그래서 한시를 잘 지으려면  한자만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글자 하나하나의 특성을 다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살아 있는 옥편이다. 지금도 1만자 이상의 옥편을 다 외운다.

2년전인 05년도에는 유도회 경상북도본부의 제1회 “전국 한시백일장”을 울진에 유치, 대회를 치렀다. 당시 시`군단위 경북도 유도회 대표자 회의가 열렸을 때,  도 유도회에서는 5백만원의 예산을 지원해 주기로하고 개최 지역을 물색하고 있었다. 타 지역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때,  예산이 비록 적었지만 팔순이 넘은 고령의 임회장은 자진해서 대회를 유치했다.

그는 울진군으로부터 1천만원을 지원 받아 전국에서 400~500명이 참가하는 대회를 무난히 치러냈다.
그리고 금년 가을에는 울진군 주최 제1회 “전국한시백일장”을 치를 계획이다. 대회를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는 그는 팔순이 넘어도 현역이었다. 울진의 문화와 역사가 팔순 노인으로부터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평생 동안 수백편의 한시를 짓고 지금도 1백여 편의 시를 외우는 그의 남은 걱정은 어떻게 울진에 한시의 명맥을 이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2년전부터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 임회장을 포함해서 작시를 할 수 있는 인사는 울진에 3명. 온정의 안병일(80세), 이무웅(50세)씨 정도라 한다.

평해 향교에서 평해 장날인 2/12/22/일 오전 10시부터~12시까지, 울진문화원에서 매주 수/목요일 오전10시부터~12시까지 약 35명의 정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평해의 황정호(50세)/ 울진의 이종수(61세)씨의 실력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한다. 이들을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울진의 한시인들의 명맥이 이어지고, 울진이‘전국한시백일장’의 전통을 이어가는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굳어져서, 임회장의 이름 또한 울진의 역사에 영원한 현역으로 남게 되기를 빈다.       

 

                                                         /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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