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송정에 올라 ... 17회

이종규 평해연세의원 원장
이종규 평해연세의원 원장

무게가 있는 물체를 줄에 묶어서 빙빙 돌리면 그 물체가 밖으로 돌출하려는 원심력이 생기고, 그 반대로 달아나지 못하게 끌어당기는 구심력이 생깁니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이 이루어지면(짝힘) 회전운동을 합니다. 

밀고 땅기는 힘의 크기가 같으면 균형을 유지하게 됩니다. 비단 이런 현상은 물리적인 관찰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질병의 방어력이나 면역력은 전파력이나 전염력과 최소한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건강을 지키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재정이나 경제 활동은 분명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지양해야 합니다. 한 부분으로 깊이 발달하거나 개발이 되는 자연과학의 혁신과는 좀 다릅니다. 


자연과학은 이런 점에서 사회과학의 개념과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면 나름대로 조직이 만들어지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은 어느 정도 규범이 만들어지고, 도덕과 공동생활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조직입니다. 
조직이 와해되거나 무질서 하게 분해되는 일을 방지하고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구심점입니다.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구심점이 되어 조직을 이끌어갑니다. 군 통수권자 역시 한 나라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구심점이 출중하면 국가는 발전하고 도약합니다. 아주 작게는 하나의 가정에서 만들어지는 구심력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무리를 이끌고 군집 생활을 하는 많은 동물사회에서도 항상 집단의 중심에는 구심점이 있습니다. 


그런 구심점을 지키는 일은 바로 자신을 지키는 일이나 다름없습니다. 구심점을 잃은 집단은 쉽게 무너지고 심지어는 존재마저 위협을 받게 됩니다. 잃어버린 구심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자신을 파괴하는 자살행위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조직사회는 항상 이런 경우를 대신할 또 다른 구심점이 직간접적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유독 공동사회에서는 더욱 철저하게 지켜집니다. 조직을 지키려는 것은 사회적인 본능과도 같습니다. 


태풍이 한반도를 종단하면서 많은 비를 뿌리던 날 우리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하시던 아버지는 결국 눈을 감으셨습니다. 가정이나 교육계에서 오롯하게 구심점 역할을 하시던 분이라서 때로는 구심력에 반하는 원심력이 강하게도 작용했었습니다. 
하지만 최대의 원심력도 구심력을 이겨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껏 짝힘이 작용하는 회전 운동이 고작일 뿐이었습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늦었습니다. 아무리 불러 봐도 메아리만 남을 뿐. 구심점을 잃던 날 하늘에는 선명한 쌍무지개가 떠서 더욱 애가 탓습니다. 


사회적인 본능에 따라서 새로운 구심점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조직을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사회적 본능은 바로, 최소 단위의 조직인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해 인간의 본능은 물론, 사회적 본능에도 충실한 것만이 고인의 뜻을 저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시름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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