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이다. 볼 일이 있어서 읍에 나갔는 데, 귀농 주동자인 남편이 119구급차에 실려 산소마스크를 쓰고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두개골이 열리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남편이 산 너머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밭에 멧돼지 퇴치기를 사다, 설치해 드린 후 사단이 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려는 순간 말벌에 머리를 쏘인 것이다. 


순식간에 입술이 풍선처럼 붓기 시작하더니, 점점 호흡이 가빠오기 시작했단다. ‘여기서 삶이 끝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19구급차를 불렀지만, 구급차가 불영계곡을 돌아돌아 오려면, 고무탄내 나도록 달려도 30분 이상은 걸렸다. 그때는 36번 국도 새 도로가 나기전이였으니까. 


‘서울에서 둘 다 사표 내고 울진으로 귀농해 땅에 엎드려 농사지으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남편은 응급실에서 한 참을 치료받고 퇴원할 수 있었다. 기도가 부어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했을 순간을 넘긴 것이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그게 끝이면 좋으련만... 며칠 전, 서울에서 온 딸이 엄마를 돕는다고 함께 일을 하는데 갑자기 말벌 떼가 나를 덮쳤다. 순식간에 셀 수 없는 말벌 떼가 내 머리를 공격하고 온 몸에 달라붙었다.


아무리 팔을 휘둘러 떼어내려 해도, 도망을 가도 벌떼는 더 발광을 하며 목표물 공격에 최선을 다했다. 그때 생각했다. ‘내 삶은 여기까지구나.’ ‘남편과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가는구나’ 하며, 이미 상황이 내 편이 아님을 인지했다.
머리는 벌에 쏘여 초토화되었고, 내 몸의 벌을 떼어주려던 딸은 딸대로 벌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게 제일 맘 아팠다. 


늦게서야 집안으로 뛰어 들어감으로써 공격은 끝이 났다. 이미 온 몸에는 두드러기가 돋기 시작했다. 119에 신고를 하고 구급차를 기다렸다. 귀농해서 그 무서운 태풍 루사와 매미의 직격탄을 맞았고, 산불의 무서운 경험으로 가슴은 건포도가 되었었는 데 이번에는 벌이다. 가지가지 한다. 


온 몸이 많이 물려 눈알을 제외한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가려움증은 나의 인내수준을 벗어났다. 딸이 나보다 덜 쏘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구급차가 오려면 20분은 걸렸다. 그때까지 제정신으로 버티는 게 관건이었다. 


문제는 벌을 많이 쏘여 머리 통증이 극심했고, 온몸이 두드러기로 도포가 되어 있어 가려움증이 극에 달했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복병은 또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지만, 벌들이 흥분해서 돌아다닌 탓에 집으로 접근을 못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간신히 병원에 도착했고, 응급실에서 오랫동안 처치를 받고 퇴원하는 것으로 귀농의 한 장면이 또 막을 내렸다. 


새해가 되면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어서, 다이어리 맨 앞장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이라고 썼었다. ‘카르페 디엠’은 라틴어로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이고, ‘메멘토 모리’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다이어리에 쓸 때는 이 ‘처방’ 대로 한 해를 살아야지 다짐했지만, 이내 망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번 말벌떼의 공격으로 초주검이 되었던 경험을 하자, 이 두 글귀가 화인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는 이 말이 이제는 메아리처럼 영혼을 뒤흔든다. 뭉크(노르웨이 화가)의 <절규>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고도 이런 지혜를 꿰뚫었다면 오죽 좋았을까?
그러나 아둔한 난 당하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쳤다.’ 그 말벌떼의 공격 이후 영화 <아저씨>의 명대사처럼 “난 오늘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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