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임명룡 서울지사장

 

한국인의 삶이 길어야 ‘인생 육십’이던 시대 추석쯤에 나는 태어났고 올해 환갑을 맞았다. 문득 내가 태어나던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되고 울진군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되던 그해다. 그밖에 역사적으로 주목 받을 만한 기록을 몇 개 소개하자면, 우선 10월 15일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이 제5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서울에서는 박정희 37만 표, 윤보선 80만 표로 득표율이 윤보선 후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초기 경제정책은 실패였기 때문이다. 바로 앞선 해 1962년 무리하게 단행한 통화개혁은 패착으로 귀결되었고, 결국 1962년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2.8%를 기록했다.

또 이듬해까지 흉년이 겹치면서 쌀값이 폭등하여 1963년 5월과 6월 한 달 사이에만 쌀값이 2배가 넘게 올라 2,500원 하던 것이 5,500원까지 뛰었다. 식당에서조차 쌀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는데, 냉해로 추석까지도 벼가 여물지 않아 찐쌀조차 만들 수 없어 추석제사상에 쌀밥을 못 올린 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가난은 여전히 바닥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절대빈곤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지구 반대쪽 영국의 한 학술지에는 ‘코리아, 경제 기적’이라는 특집이 실려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코리아’는 우리 대한민국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시절 세계에서 ‘코리아’는 북한을 의미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인 저명한 여성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Joan Robinson)이 1964년 북한을 방문한 뒤, 영국 좌파 계열 저명 학술지에 ‘코리아, 경제 기적’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던 것이다. 로빈슨은 자유 시장경제 대신 정부개입경제를 뜻하는 케인스경제의 기틀을 다진 사람으로, 그만큼 서구에서 인정받는 석학이자 경제학자다. 그 논문에서 로빈슨은 북한을 “빈곤이 없는 국가”로 소개하면서. ‘2차 대전 이후 유럽이나 미국의 눈부신 경제성장도 북한의 성공에 비하면 그 빛을 잃는다’고 북한을 극찬했다.

그러면서 만약 남한 국민들에게 국가 선택권을 부여하면, 모두 북한을 선택할 것이라고도 했다. 또한 로빈슨은 북한이 더욱 발전하고 남한은 점점 쇠퇴하면서 결국, 북한이 사회주의로 남한을 흡수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냉전시대 서구 좌파 경제학자답게 과장이 심하지만, 어쨌든 그 당시 남한에 비해 북한이 훨씬 잘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편, 그 시절 우리 국민들이 꿈꾸었던 미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일하는 근로자가 68.5%나 되던 그 춥고 배고프던 시절, 배는 굶어도 희망은 찬란하고 웅장했다. 그 시절 <동아일보>는 1월 1일 신년특집으로, ‘미래예측 2000년’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일종의 SF 소설로 당시 빈곤과 결핍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유토피아적 환상과 희망에 버무린 것이었다. 그런데 60년이 지난 지금 신기하게도 그때의 상상이 거의 맞아떨어져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한국인은 여전히 황인종이로되 성형수술이 발달하여 백인 행세가 수월할 것이다.”로 시작하는 첫머리부터가 그렇다.

“인공위성과 원자력으로 세계는 무척 좁아졌고, 스위치 하나로 방안이 스크린으로 변하여 세계 각국의 TV방송을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2023년쯤에는 핸드폰으로 세계 모든 방송을 본다는 것도 상상불가는 아니었을 것이다. “전자두뇌가 널리 쓰이고, 확시밀리(팩시밀리)로 신문이나 편지가 전송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문학전집이 수첩보다도 작은 데 수록된다. 여자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부럽지 않은 세상에 모유 대신 인공유를 쓴다. 아이들도 빨리 자라고 평균 신장, 체중도 훨씬 커졌다.”

이정도면 판타지 기사가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 기사는 어디까지나 판타지였을 뿐, 작성한 사람도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판타지를 우리는 현실로 실현했다. 이것이야 말로 ‘기적’인 것이다. 로빈슨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수많은 북한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남한을 선택하고 있다.

심지어 영국의 북한대표도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들을 ‘쓰레기’라고 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이 지난 60년 동안 상상을 초월한 발전을 이룩한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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