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 칼럼 / 초가삼간의 행복...52


 

범상스님
범상스님

국기가 나라의 상징이듯 세상은 상징으로 소통한다. 말이라고 하는 언어 역시 상징에 해당하며, 유식학(唯識學)에서 인간은 언어로서 정보를 저장(기억)한다고 정의한다. 말이 귀를 통하는 소통의 상징이라면, 문자, 그림 등은 눈을 통해서 소통되는 상징이다. 


 지난 호에 울진을 대표하는 사찰인 불영사(佛影寺)는 산등성에 부처를 연상시키는 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것에서 불러진 이름이며, 현재는 관리부실로 그 모습 볼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불영사라는 이름은 자연현상이 문자라는 상징으로서 표현되었다. 그래서 직접 보지 않은 사람도 문자를 이해함으로서 어느 정도 짐작의 소통이 가능하다. 동양화는 이러한 소통의 입장에서 그려짐으로 비록 표현양식은 달라도 문자와 그림이 지향하는 목적은 일치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영(佛影)을 그림으로 그렸다면, 자연현상과 더불어 그림의 목적인 부처의 가르침을 읽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림이 나타내고자하는 상징을 읽어내는 것을 독화법(讀畵法)이라 한다. 독화법에 위배되어 가장 많은 오해를 낳고 있는 고사는 당태종이 선덕여왕께 보냈다는 홍(紅), 자(紫), 백(白)의 세 가지 색의 모란그림과 석 되의 씨앗이다. 『삼국유사』 등은 독화법을 모른 상태에서 저술되었고, 이를 근거로 다음과 같은 억측들이 난무하다. 


문화재청은 ‘모란도’를 소개하며 <권위와 부귀, 절세미인을 상징하는 모란>이라는 제목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의 일이다. 당나라 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도 석 점과 모란 씨 석 되를 선물했다. 지혜로운 여왕은 그 선물들이 배필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희롱하는 것이란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그림의 내용이 향기 없는 모란(여왕)에는 벌과 나비(남자)가 찾아 들지 않는다는 걸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향기 없는 왕’이 아니라, ‘향기 나는 왕’ 임을 만방에 알리기 위해 보란 듯이 경주에 분황사(芬皇寺)를 세웠다”고 소개하고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성호이익 역시 <모란무향>이라는 시를 지으며, 신라 선덕여왕은 모란도를 보고 모란이 향기 없는 것을 알고서 이르기를, “절등하게 고와도 벌과 나비는 찾아오지 않겠다.” 했으나, “내가 경험해 보니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다만 꿀벌이 없는 것은, 꽃은 곱지만 냄새가 나쁘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독화법과 무관한 것이 분명한 것은 ‘씨앗을 심었더니, 과연 덕만 (선덕여왕) 의 말대로 꽃에 향기가 없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독화법으로 모란도를 읽어보자. 꽃 중의 꽃(花中之王)이라 불리는 모란은 빼어난 자태 덕분에 부귀화(富貴花)라고 불리고, 동양화에서는 부귀(富貴)의 상징으로 그린다. 예를 들면 모란을 중심으로 목련, 해당화를 함께 그려놓고 화제(畫題)을 부귀옥당(富貴玉堂:귀댁에 부귀가 깃들기를...) 이라고 적는다. 이때 모란은 부귀, 목련의 다른 이름 옥란(玉蘭)의 옥(玉)자와 해당화(海棠花)의 당(棠)을 차음하여 당(堂)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모란과 장닭을 그리면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되고, 부서지지 않는 바위와 함께 그리면 부귀수(富貴壽), 편안할 평(平)과 발음이 같은 병(甁)을 그리면 부귀평안(富貴平安), 백두조(머리가 흰 새) 를 그려서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뜻으로 부귀백두(富貴白頭)로 읽는다. 


이때 백두조 두 마리를 그리면, ‘부부가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와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뜻이 된다. 만약 백두조의 새끼가 아니라 성조(成鳥)를 두 마리 이상 그리게 되면, 내용이 엉망이 되어 버린다. 그렇다면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나비는 반드시 고양이와 함께 그린다. 이때는 고양이는 70세를 나타내는 모(耄)가 되고 나비는 80세를 나타내는 질(耋)이 되어 70~80세가 되도록 부귀를 누리라는 뜻으로 부귀모질(富貴耄耋)로 읽는다. 그런데 고양이를 빼고 나비만 그리면 80세가 되어서 부귀를 누리라는 뜻으로 한정 될 수 있어 함께 표현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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