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길의 산책길 따라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박호길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박호길

사람에게 사계절이 주는 느낌은 다 다를 수가 있다. 봄은 무엇인가 바라고 기다리는 희망의 계절이지만,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계절이 늦가을이다. 오곡이 풍성하여 농부들이 풍년가를 부르는 계절이기도 하다.

깊어가는 가을밤 저 애절한 귀뚜라미 소리에 아련한 슬픔을 아니 느낄 사람이 누구인가?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가을은 확실히 이별의 계절이고, 추억의 계절이기도 하다. 좀 더 깨끗하고 참되게 살았어야 했을 것을 하고 돌이켜보는 반성과 초조함은, 이제 얼마 안 있어 겨울이 다가올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서풍에 부치는 노래” 를 지은 시인 셀리는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라고 했다. 겨울이 오면, 그것으로서 일단 모든 일이 끝난다고 보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결국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한 느낌이라고 하겠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 정한 이치인 것처럼, 사람도 살다가 가을을 느끼게 마련이다.

영국 시인 월터 새비지 랜더는 70회의 생일을 맞아 시 한 수를 지었다. “나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다 /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없었기에 / 나는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다음으로는 예술을 사랑했다 / 나는 삶의 불 앞에서 두 손을 쬐었다 / 그 불이 가라앉으니 / 나도 떠날 준비가 되었다.” 70세의 노년을 맞이하던 이 시인의 생에 대한 정직한 결산과 죽음을 향한 담담한 태도는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했지만. 자연과 예술이 인간의 아름다운 노력을 집중할 만한 신념과 자부심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가 “사망아, 너의 승리가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장 54절) 하고, 외칠 수 있기 위하여는 인간을 사랑하는 높은 자리에서 자연을 사랑하였다면, 그의 예술은 더욱 빛났을 것이다. 인생의 늦가을이 왔다.

단풍도 이제 빛깔이 바래고 낙엽이 되어 뒹군다. 다랭이(계단식 논)논의 벼들은 논바닥에 누워있다. 논두렁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늦가을 햇살의 따스함을 만끽하고 있다. 이삭이 잘 영글어 황금빛을 발하고 기대어 누운 이삭은 고개를 가지런히 숙이고 있다. 봄부터 농부는 이 알찬 결실을 보기 위해 그토록 땀 흘려 심고, 김 메고, 가꾸었나 보다.

“농부는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다.” 하지 않는가? 늦가을 땀흘려 지어온 곡식들이 풍성함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가까워지면, 우리들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하나같이 서툴고 부족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이 모든 것들은 다음에 올 더 좋은 것을 위한 준비이기에,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원로 장로 박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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