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칼럼/ 초가삼간의 행복 ...54

 

범상스님
범상스님

작년가을 충남 홍성 남당항에서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최창원(혜전대교수) 작가가 석 달 동안 하루 10시간씩 폭 120cm, 길이 100m의 화지(畫紙)에 1만 마리의 새우를 그렸다는 ‘해하도(海蝦圖)’를 미국 세계기록위원회(WRC)와 한국기록원(KRI)에 등재하기 위함이었다.

작가는 ‘세계 평화를 염원하고 해양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며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무런 설명 없이 –독화법을 모르는 듯- 새우는 동양화에서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소재라고만 했다. 여느 행사처럼 한국대표들의 일상적 인사말이 끝나고 중국 대표단의 순서로 이어졌다. 결국 필자가 위태위태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중국대표, 새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 딱딱한 갑옷[甲衣]을 입고 있어 최고(甲)를 뜻한다. 둘째, 수염이 길어 바다의 신선(神仙)이라 하며 셋째, 허리가 굽었다 하여 바다의 노인[海老]라 부른다. 그래서 신선이라 불릴 때 새우그림은 집안을 수호하는 의미이며, 해로(海老)의 독음이 백년해로(百年偕老)의 해로(偕老)와 같아서 부부금슬을 상징한다.

넷째 딱딱한 껍질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자유롭다 하여 만만순(彎彎順)으로 쓰고, ‘매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다’로 해석한다. 다섯째, 넓은 바다에 살면서도 항상 자신을 구부려 낮춘다 하여 겸양의 미덕이 있다고 한다. 여섯째, 선물로 줄때는 ‘새우 하(蝦)’의 독음이 축하 한다고 할 때의 ‘하례 하(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 새우가 그림의 소재가 된 이유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설명했다.

순간 대한민국은 문화적으로 중국에 뒤처진 꼴이 되어 버렸다. 만약 앞 순서의 한국대표들 중 누구 하나라도 새우가 상징하는 의미를 잘 설명했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나중에 올라온 중국 대표는 00분께서 말씀 하셨듯이 새우그림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정도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를 포함 서너 명의 한국 대표는 세우의 의미에 대해서 한 마디 언급 없이 세계기록 등재만 운운했다.

이에 중국 대표는 마치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듯 분위기를 장악해버렸다.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관계자 중 누구하나 행사장에 오기 전 인터넷에 ‘새우그림의 의미’ 정도만 검색해 보아도 이러한 국제망신은 면했다고 본다. 안타까운 것은 새우젓으로 유명하고 ‘새우젓축제’를 하고 있는 홍성군 광천읍에서 필자가 주관하는 몇 번의 행사에 새우그림의 의미를 설명했었고, 축제의 한 주제로 넣었으면 좋겠다며 제안한 바 있기 때문이다.

우리 울진은 새우와 같은 갑각류인 ‘대게와 붉은대게 축제’를 하고 있다. 축제 홈페이지의 내용을 간략해 보면 ‘대게는 죽해(竹蟹), 즉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소개한다. 동양화에서 게[蟹] 역시 중요한 의미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게를 갈대로 묶어 놓은 모습으로 그린다. 그리고 그림의 화재(畵材)를 전로(傳蘆)라고 써 놓는다. 글자 그대로 ‘갈대를 전하다’로 읽으면 무언가 이상하다.

중국에서는 전로(傳蘆)의 발음이 전려(傳臚)와 같다. 이때 려(臚)는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음식을 뜻한다’ 따라서 껍질의 갑(甲)은 최고를 뜻하니 당연히 급제중의 급제 장원급제요, 갈대로 꽁꽁 묶어 놓았으니 이번에는 틀림없다는 기원을 담고 있다.

때로는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고(먹고)있는 모습을 그려놓고, 이갑전려(二甲傳臚)라 써 놓았다. 이때는 ‘두 번 연속으로 장원급제하여 임금님이 내리는 음식을 먹다’라는 의미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그런데 엉뚱하게 김홍도는 게 두 마리와 갈대를 그리고서는 화제에 ‘(게는) 용왕이 있는 곳에서도 옆으로 걸어간다(海龍王處也橫行)’라고 써 놓았다. 아마도 자기의 정체성과 줏대를 잃어버리고 임금께 아첨하는 관료들을 빗대지 않았을까 싶다.

동양화에서 게를 여러 의미로 읽어내듯이 ‘대게와 붉은대게 축제’ 역시 먹거리라는 바탕에 그림과 인문학적 요소를 보태어 보면, 더욱 색다르고 풍부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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