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기도 안양에 사는 친구 아파트에 차를 가지고 방문했다가 주차문제로 그곳 주민분과 시비가 있었다. 지하주차장을 몇 바퀴째 돌았으나 주차할 자리가 안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파트는 분양당시 가구당 주차장이 1,00으로 충분했으나 지금은 가구당 차량 대수가 1,20 이상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한 참을 돌다가 겨우 빈자리를 찾았지만, 좌우측 차량들이 주차라인에 바퀴를 걸치고 있어 공간이 부족했다. 달리 빈자리도 없고 해서 좁지만 그 자리에 일단 차를 세웠다. 차문을 열고 내리기가 불편했으나, 내가 워낙 마른 체격이라 조심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참 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차를 ‘이 따위’로 주차하면 어떻게 하는 거냐며 대뜸 소리를 질렀다. 고함에 울컥해서 그쪽은 주차라인에 바퀴가 걸쳐있고 나는 라인 중앙에 정상적으로 차를 세웠다고 했더니, 자기는 차가 커서 어쩔 수 없이 선을 밟을 수밖에 없단다. 그러면서 먼저 주차한 사람이 타고내릴 공간은 두고 주차하는 것이 운전자의 예의가 아니냐며 화를 냈다. 더 이상 언성을 높여봤자 감정만 상할 것 같아 군말 않고 내려가 차를 옮겼다. 그 아파트는 분양광고를 할 때, 주차공간이 좌우로 10cm가 더 넓어 이렇게 ‘편한세상’이라고 자랑하던 아파트다. 불과 20년 년 전이다.

 

한편, 아파트들이 광폭주차장을 광고를 하던 시절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율곡사업으로 시끄러웠다.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차세대 전투기 선정 문제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었다. 정부가 처음에 추진하던 기종은 F-18이었는데 중간에 F-16으로 변경했고 이에 대해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F-18이 비록 가격이 비싸지만 성능이 우수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한 답변을 맡은 군사전문가는 두 전투기의 가성비를 놓고 일반인들이 알기 쉽도록 설명했다. 그는 전투기를 승용차에 비유했다. “F-18이 아반떼라면 F-16은 엑센트SC다.” 한마디로 성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데 가격차이가 너무 난다는 것이었다.

 

그때 군사전문가가 비유한 승용차는 그랜저나 에쿠스가 아니고 아반떼와 엑센트였다. 그 차들이 당시 우리나라 보편적 승용차였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불과 20년 전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모든 것이 크고 비대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그랜저 따위는 큰 차로 여기지도 않는다. 한 집 건너 한 대씩 있다는 SUV는 점점 커지더니, 광폭주차장 선을 밟고 아반떼 운전자를 윽박지른다. 우리는 아반떼를 얕보지만 F-18은 이미 단종되었고, F-16은 여전히 세계의 하늘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극도로 비대해진 사회에 살고 있다. 신혼부부도 25평 아파트는 좁아서 못 산다고 하는 판이다. 집이나 차량만 비대해진 것이 아니다. 자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비만이다. 비만해진 자아들이 자신의 권리만을 외친다.

 

인간은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잊은 지 오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삶의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험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사람은 사람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사람이 무서워서 사람이 싫다는 사람 천지다. 비만한 자아들이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며, 상대의 존재가치를 무시하기 때문에 불쾌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잦은 불쾌한 경험들이 쌓이고 누적되어 우리 사회는 병들었다.

 

자아 비만 사회의 대표적 질환은 ‘자랑질’과 ‘비교질’이다. 우리는 지금 이 두 가지 고질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식만 호텔에서 하는 게 아니라, 요즘은 프러포즈도 초호화 호텔에서 하는 게 유행이다. 비용만 570만원이나 드는데 SNS에는 그런 사진이 흔하게 돌고, 또 그런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비교되어 청춘이 좌절하는 나라다. 초저 출생률은 이런 질병의 당연한 결과다. 다이어트는 신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도 비만해지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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