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이별의 이중주에서 피어나는 희망가

‘청나일 쪽으로’ 를 읽고

사람은 객관적인 외적 경험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뇌와 번민, 상처 등의 내적 경험을 통해서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는 존재다. 표지판도 없는 인생 여행에서 자신의 의미를 기어코 찾아낸 사람은 적어도 불행하지 않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최빈국인 한국이 G20 클럽에 들 정도로 압축`성장한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는 일은 지난하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오랜 전통 문화는 여자들에게는 불리하다. 아내들에게는 더욱 혹독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희단 작가는 모든 것을 딛고 첫 창작집을 출간했다. 그것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이것은 자신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 땅의 수많은 아내들에게 망망대해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작품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대략 이렇다.

이희단 작가의 가족사에는 죽음의 깊은 슬픔이 고여 있다. 어린 동생이 익사하고,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돌아가신다. 속마음을 나누던 언니도 암으로 세상을 마감한다.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돌보는 작가의 짐은 무겁다.

남편은 성실하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무심하고 장남으로서 친가에 너무 치우쳐 있다. 안팎으로 위로 받을 수 없는 작가는 ‘밤하늘의 별’ 같은 자식들을 통해 겨우겨우 살아갈 용기를 충전한다. 심지어는 남편의 외도조차 이를 악물고 참아가며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다. 모성의 힘과 강한 의지로 남편의 사업도 일으켜 세우는 내조를 한다.

남편 사업이 안정되자, 남편을 따라 해외 출장도 하고 국내외 문학과 미술기행을 하면서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된다. <청나일 쪽으로> 소설집은 그 기록이다. 죽음과 이별의 깊은 슬픔에서 퍼올린 아름답고 슬픈 문장들이 소설 속에서 푸르게 흘러간다.

소설집을 통해 이희단 작가의 가족사를 요약해 보았다. 작가와 작품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작품의 깊이는 작가의 상처의 깊이와 통한다고 보면 이희단 작가의 내공은 간단치가 않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피붙이와의 사별과 영혼을 교감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은 작가를 더욱 성숙하게 한다.

내가 알고 있기로도 작가는 교보문고가 추진하던 해외문학기행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교보문고와 국내 단체가 추진하던 문학기행, 미술기행, 전시회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작가와 교류하던 김주영, 윤후명, 황충상, 박범신, 오정희 소설가, 정호승 시인이 있으며, 화가로도 민정기, 서용선, 최석운, 한생곤 화백 등이 있다. ‘길 위의 인문학’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문학나무 편집장도 역임하고, 문인 모임의 회장도 맡고 있다.

한마디로 줄여서 교보 문학행사가 키운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사의 아픔과 내일의 희망을 직조하는 작가다.

필자와는 제주도와 울진, 안동에서 이 작가와 이 작가의 친구들과도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오래 이 작가를 지켜본 필자는 작가의 ‘영혼의 자식’ 인 첫 창작집을 밤새워 읽고는 죽음과 이별의 아픔을 꿋꿋이 딛고 날아오르는 작가의 새로운 에너지를 느꼈다.

너를 찾아! 격려하는 작가의 언니와 동생, 선친의 격려를 소설집에서 느꼈다. 무엇보다 작가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밤 하늘의 별’ 같은 자식들의 격려도 소설을 통해 느꼈다.

바라건데, 소설 무대의 확장된 공간 만큼이나 작가의 정신적 공간도 세계적으로 확대 했으면 한다. 개인적 서사를 뛰어 넘어 거대 담론도 다루었으면 한다. 이 작가의 문장은 목소리는 낮지만 진솔한 울림은 크다. 세계는 정신적 맏며느리를 원한다. 이왕 ‘영혼의 자식’을 세상에 내놓은 바에야 ‘한국의 펄벅’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사실이야 아니겠지만, 소설 속의 남편과도 화해하고 백년해로하기를 바란다. 집안을 일으켜 세운 그의 삶도 말은 안해도 얼마나 고달팠겠는가? 전쟁터와 다름 없는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을 터이다. 남편을 위한 비가도 집필해 주기를 바란다.

울진 바다의 파도소리와 금강송 군락지의 솔바람소리도 이 작가의 문장에 스며들기를 고대한다. 울진신문 전병식 대표와 지장수 막걸리에다 머리고기 놓고 작품 품평 곁들여, 울진도 노래해 보자! 다음 작품집을 고대하며 건필을 빈다.

 

/이종주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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