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박호길
울진중앙교회 원로장로박호길

어떤 이는 혼자일 수도, 또 누군가는 함께일 수도 있는 겨울밤, 누군가로 인해 설레이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미워하다 못해 원망할 수도 있는 ‘사랑’에 관한 감정들…. 그리고 따뜻할 수도 차갑고 시릴 수도 있을 겨울밤에 책 읽기에 좋은 시간이다.

하루의 번잡스러움이 모두 가시고 적당한 피로와 휴식을 맛볼 때, 어제 읽다가 접어둔 책을 꺼내 일일연속극처럼 이어 읽는 맛은 또 다른 행복이다. 일주일 정도 책을 이어 읽느라 갈피마다 몇 개씩 접힌 흔적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매듭들이 명전(明轉)과 암전(暗轉)으로 엇갈리며 떠오른다. 요즘 살아가면서 밤을 오롯하게 책 읽으면서 지낸다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때로는 한 번에 길게 끌고 가는 독서보다 짬짬이 잘라 읽는 것도 재미있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활동성도 적을 뿐, 밤도 길어서 책을 읽기에는 좋다. 한참 동안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가 창밖으로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걸 보면 얼마나 황홀한 지 모른다. 차갑지만 솜처럼 포근할 것만 같은 눈이 종이 속에 가둬놓은 글자들을 모두 풀어헤쳐 눈과 함께 나부끼게 만든다.

예컨대 독서삼여(讀書三餘)라 하여 독서를 하기에 적당한 세 여가 즉 겨울, 밤, 비올 때를 뜻하는 음우(陰雨)를 말한다.

삼여 가운데 겨울과 깊은 밤이 한꺼번에 있는 요즘 눈까지 내리면, 그야말로 여름철 팥빙수처럼 달콤하다. TV를 볼 때는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면서도 늘 헛헛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책 읽는 것은 제 발로 숲을 거닐고 온 것 같은 충만함을 늘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요즘 옛 책도 읽다보면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타임캡슐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곧 글을 아끼는 마음이다. 시간과 돈을 아껴서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책을 사고 그 책을 자기만의 책장에 꽂아두고 틈틈이 읽는 사람,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일 겁니다.

한 해를 마감할 때가 돼서인지 늘 시집, 성경 한 대목씩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나름대로 즐겁다. 지난 한 해 기쁜 일도 있었고, 부끄러움 씻겨지지 않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새해는 더 많이 사랑하고, 좋은 일 열심히 하며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책은 그런 저에게 행복한 자양이 되어서 고맙고 소중하다. 요란하게 한 해를 마감하기 보다는 차분하게 책을 읽으며, 후일 내 인생 갈피마다 접어둔 이야기들이 누군가와 함께 공감하며, 일상 속 나의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아 정리하는 것도 좋겠다.

 

/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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