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식용 논란 보다 더 큰 문제>

 

범상스님
범상스님

‘개식용 금지법’ 논쟁이 뜨겁다. 입법 이전에 전통문화와 사회현상의 측면에서 충분히 논의 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반려동물이라는 논리가 강조 되고 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개한 식문화라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구비문학에는 주인의 은혜를 갚은 ‘오수 개’와 같은 이야기가 전국에 산재되어 있고, 필자가 사는 홍성에도 똑 같은 내용 전개를 가진 의견비(義犬碑)가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 입장에서 개식용 여부를 논할 문제가 아니다.

 

불교를 비롯한 아주 오래된 사회적 타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86아시안게임 이전까지는 삼겹살 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후 세계인들을 맞이해야 한다는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개장국, 보신탕, 영양탕, 사철탕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며 생존의 기로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참으로 기구한 음식이다.

 

온돌문화는 개에 대해서 다른 입장이다. 우리는 인류 최고의 난방시설인 온돌 덕분에 짐승과 한 지붕 밑에서는 살았어도 같은 방에서는 살지 않았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외국인들이 극찬했듯이 온돌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오고 방바닥에 몸을 지지는 구조이다. 참으로 위생적이고 과학적인 주거방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신발을 신은 채 방에 들어가고 침대에 눕기도 한다. 왜냐하면 찬 바닥에 그냥 앉고 누울 수 없어 침대와 의자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난로를 피울 수도 없다. 온돌에 비해 연료가 몇 배 많이 들지만, 더운 공기가 천정에 머무르는 통에 난방이 매우 힘들다. 궁여지책 잠자리에 개를 끌어안고 개의 체온을 빌려서 죽음의 겨울을 넘겼던 것이다. 아예 짐승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온돌방과 개를 안고 잠을 자야 살아남는 침대는 전혀 다른 입장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잠을 잘 때도 신발을 신어야 하며, 모든 게 부족하여 얼어 죽던 시절 생환(生還)의 봄을 기다리며 함께 견뎠던 동료로서 충분히 반려의 의미에 포섭된다.

 

이번에는 반려동물의 열풍이다. 개인의 취향을 떠나 커튼 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인구절벽이라는 저출생시대 소아과 병동이 사라지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들이 문을 닫고 있다.

 

TV에서도 엄마 젓을 대신하는 분유광고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육아산업은 사양길이다. 여기에 ‘개 한 마리 키우는 게 아이 하나 키우는 것만큼 돈이 들어간다’는 말처럼, 반려동물산업을 부추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기업 활동이 아닐까 싶다.

 

더 큰 문제는 인간적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정(情)의 시대가 끝나고, 일방소통의 매뉴얼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위안의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컴퓨터(기계)는 명령어로 움직인다.

 

모두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 점 하나 틀려도 메일을 보낼 수 없는 시대, 알게 모르게 인간적 소통은 단절되어 간다. 전통사회에서 아이들은 놀이에서부터 서로 합의하여 규칙을 정하고, 정해놓은 규칙에 없었던 사안이 벌어지면 서로 의논하여 방안을 찾는다. 그런데 컴퓨터 시대의 사람들은 누군가(컴퓨터)가 미리 정해 놓아 –바둑, 장기처럼 훈수도 조차도 용납 없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적 사정이나 호소가 통하지 않는 매뉴얼대로 게임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별한 매뉴얼이 없는 인간관계는 점점 서툴러졌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자기만 따르고, 내리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먹이나 위압으로 통제가 가능한 반려동물에 빠지게 된다. 빠졌다는 것은 반려동물로 인해 이혼을 감수하고, 가계가 파산을 해도 놓지 못하고,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감내하고, 알레르기로 병원을 다니면서도, 이웃 간의 민원에 시달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개고기 문제’ 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일어났다. 따라서 개인의 취향에 맡겨도 충분한 ‘개식용 문제’는 이미 철지난 논쟁이 아닐까 싶다. 필자가 늘 주장하듯이 빵, 라면 등에 비해 첨가물이 1도 들어가지 않는 고품질 탄수화물인 밥이 공격받는 것은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반려동물산업에 광고비를 쏟아 붓는 동안은 반려동물에 의지 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 단절의 문제는 표면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개식용 금지법’ 논란에 앞서 이와 같은 논의가 선행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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