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내게서 새봄은 언제나 달력을 넘기는 손끝에서 먼저 느껴진다. 넘겨놓고 바라보면 가슴에 실바람이 스치는 흔들림에 아까운 생각, 놓쳐버린 그 짧지 않은 시간에 대한 후회가 따르는 듯하다.

새해 들어 정초의 각오와 다짐이 새봄부터가 아니던가. 언제까지나 꿈지럭대고 미루기만 할 수는 없는 일, 봄이 시작되니 새 기분으로 밝은 마음으로 상쾌한 발길로 출근하고 싶다.

밝은 하루를 충실한 시간으로 그렇게 날마다의 의미를 소중히 하고 싶다. 콧잔등에 간지럼 태우는 봄비의 촉감, 꽃집 앞에 내어놓은 버들개지도 한 번 더 돌아보고, TV 화면의 아롱점박이 송아지가 하품하는 모양, 그 쬐그맣고 시답잖은 사랑스러움에도 쉽게 눈길 주고 한참 웃고 싶다.

길거리에는 아직 살찬 바람이 서성대고 있어 그 어디에서도 봄을 느낄 순 없으나 TV, 라디오, 신문 등은 봄을 부르기에 바쁘지 않은가!

우리들은 새봄을 새롭게 맞을 줄도, 그래서 일 년 동안의 생활도 전보다 다르게, 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게 계획하고 꾸려나가는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게 마련인 사람이 아닌가?

하다못해 우리는 집안의 책상과 책꽂이의 자리를 바꾸고, 서랍을 정리하고 베란다의 유리창을 말끔히 닦아내어 집안 가득히 봄볕을 채우리라. 그리고 수년 살아온 나무들, 화분 속에 돋아날 새싹을 기다려 앉아 흥얼흥얼, 봄노래도 혼자서 부르리라. 봄을 기다리는 시 한 수도 가만히 소리 내어 외워보리라.

이렇게 청소하고 나니 한결 새 기분이 되고, 매년 반복되는 직업 생활의 권태와 지겨움도 덜어진 듯하다.

사람이 어찌 늘 고상하기만 하랴 싶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써서 내 시선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두고, 금년도에 할 일도 수정하여 붙여둔다.

이렇듯 마음먹고 입속으로 되뇌어 보니 각오도 새로워지는 듯, 남 보기엔 어떨지 모르나, 직업도 때로 지겹고 고달프고 힘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왠지 괜찮다는 직업일수록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부럽기 전에 늘 동정이 먼저 일어나곤 한다. 차라리 단순한 직종이 어떨까? 직장 일만 하고 집에 가면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직업이 부러울 때도 많았으나, 속 모르는 이들은 그래도 부러워하는 직업이 아닌가?

한낮 서점에 들러 신간 책을 사 안고 돌아오면서, 내 직업의 의미와 가치가 내게는 무겁게 느껴져 새로 가진 기운마저 다 빠지게 하는 듯, 온통 책으로 묻혀가는 집과 작은 글방이 나를 너무 압박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 자기 직업의 가치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발견하는 이는 즐거운 직장생활에 행복한 직업인이 될 수 있으리라!

새봄 새 각오로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는 성공적인 직업인이 되자고 다짐한다.

 

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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