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사장 임명룡

임명룡 서울지사장님
임명룡 서울지사장님

그동안 칼럼을 통해서 울진과 관련된 많은 역사적 기록과 전설들을 여러분께 소개해왔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을답게 수많은 인물과 전설들이 골골이 다채롭게 스며있어 새삼 놀랄 때가 많다. 그런가하면 전설이나 동화 같은 이야기가 단지 과거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경우도 있는데, 화가 정미애(아델라정)와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도 그 중에 하나다. 정미애 화가(이하 정작가)는 울진군 후포면 출신으로, 경기도 파주시 콩세유 미술관 대표이자 관장이며, 강남 도곡동에도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정작가는 울진 금강송과 산양을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콩세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입구에 전시된 대형 캔버스에 빼곡하게 들어찬 금강송을 보는 순간 압도되기도 한다. 그 금강송 한가운데 새하얀 산양 한 마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 산양은 정작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어 있으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편이 그 속에 있다.

정작가의 아버지는 1934년 청송군 진보면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채 여섯 살도 되기도 전에 양친이 작고하는 바람에 6남매는 고아가 된다. 굶주림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맏이는 여섯 살 막내를 마을과 아주 멀리 떨어진 울진군 온정 산골에 유기하고 만다. 소나무 숲 사이로 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는 봄날이었다. 진보에서 온정까지 그 먼 길을 온종일 걸었다. 지쳐서 쉬고 있는데 큰형이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형아 금방 올게” 형제는 그렇게 해어졌다. 아이는 너무 어려서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소나무 등걸에 기대어 깜박 잠이 들고 말았고 깨어나 보니 깜깜한 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무서운 밤이었다. 소년의 기억에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손을 뻗어 나무를 더듬는데, 우툴두툴한 소나무껍질이 손끝에 닿아 솔향기가 났다고 한다. 칠흑 같은 밤 굶주린 아이는 솔향기를 맡으며 의식을 잃었다.

그로부터 나무꾼이 소년을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나무꾼은 지개에 아이를 얹어 가장 가까운 마을로 달려갔다. 온정면 두실마을이었다. 소년이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엄마품속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새엄마 품이었다. 우리 아기 이제 다 잤냐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데 엄마 젖 냄새가 났다고 한다. 그렇게 새엄마 품에서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과 아버지 성함 그리고 형제들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양부모는 언젠가 아이의 가족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의 성씨와 이름을 그대로 두고 호적에 동거인으로 올리고 키웠다. 양부모의 사랑 속에 훤칠한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6,25동란이 지나고 얼마 후 결혼도 했다. 가정을 이룬 청년은 후포항에서 목수 일을 했다. 체격이 건장하고 기술 습득이 빨랐던 그는 얼마 안 가 목재소 최고 기술자가 된다.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이 없던 시절 생선상자는 전부 나무상자였다. 후포항 인근에서 산판(山坂)을 통해 목재를 공급했는데, 큰돈이 오가는 산판 거래도 청년이 맡아서 할 정도로 인정받는 책임자가 됐다. 어렸을 때 솔향기를 맡으며 의식을 잃었던 그 소나무 숲을 산판 할 때도 그가 주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삿갓에 도포를 입은 어르신 한분이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정아무개가 살고 있는 집이 맞는가를 몇 번이나 묻더니 그대로 마당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오래전에 두실마을 뒷산에서 해어졌던 맏형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원망이 앞섰으나 당시 큰형님의 사정상 도저히 식구 전부를 돌볼 수 없었다는 사실과, 말기 암 환자로 죽기 전에 꼭 동생을 찾아 용서를 빌러 왔다는 말에 형님을 끌어안고 울었다. 형님을 따라 고향 진보에 갔다가 자신이 경주정씨 문중 족보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 또다시 오열했다고 한다. 이 모든 사연을 아버지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정작가는 미술작품으로 전설을 승화시키고 있다.

도곡동에 갤러리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던 날, 나는 지하철 안에서 초대장에 적힌 주소로 위치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온정면 두실마을 출신으로, 입시학원계 전설(legend)이 된 이영희 진학학원 재단이사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 후문 앞이었다. 즉시 초대하여 정작가와 저녁을 함께 했는데 이영희 이사장은 정작가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산주(山主) 집안의 막내였기에 사랑방에 손님으로 와서 산판을 논의하던 장면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했다. 어린 소년이 아사 직전에 나무꾼에게 발견되었던 바로 그 산이었다. 이 또한 신기한 인연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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