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문화원장 겸 수필가

김성준 울진문화원장
김성준 울진문화원장

2월10일이 구정이다. 아마 우리 민족에겐 가장 큰 명절일 것이다. 이날은 객지에 나가있던 자식들이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조상님들께 차레를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아오기 때문에, 흔히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설날은 매우 즐거운 날이다. 새 옷을 입는 즐거움, 세배 돈 받는 즐거움, 새 양말을 신는 즐거움, 이런 것 때문에 설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필자가 어릴 때 만 해도 설날 세시풍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설 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하여 밤새도록 뜬눈으로 새운 적도 있다, 어쩌다 깜빡 잠이 들면 어느새 눈썹이 하얗게 쉬어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른들이 떡가루 같은 걸로 눈썹에 발라 큰 일 났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이른 새벽, 마을 청소년들이 복조리를 팔러 다닌다, 대나무로 엮은 복조리를 어깨에다 잔뜩 메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울타리 안에 두어 묶음을 던져 놓고 갔다가 나중에 돈을 받는다. 복조리는 처마 밑에도 걸고, 부엌에도 걸고, 안방 문 인방 위에도 걸어 놓는다, 조리에 복이 가득 담기라는 뜻일 게다,

설날에는 새벽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어른들은 빳빳한 새 지폐로 세뱃돈을 주신다, 친척집이나 이웃집 어른들에게도 찾아가 세배를 드린다, 가는 곳 마다 세뱃돈에다 맛있는 음식을 주기 때문에 너무 재미있는 하루다.

이런 풍습은 어른을 섬기는 효심도 길러지고, 이웃들과의 끈끈한 정도 생기고, 친구들과의 교제, 자주 못 보던 친척들과의 만남 등 장려할만한 미풍양속이다.

옛날 궁중에서도 정월 초하룻날에는 특별한 의식을 행했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일월성신(日月星辰)께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는 ’은력(殷曆) 정월에 하늘에 제사하고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니 이를 영고(迎鼓)라 한다. 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농사를 근본으로 삼아온 농경민족이다, 70년대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전만해도 국민들의 주 소득원은 농업이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 했다. ‘농사가 모든 산업의 근본’이란 얘기다. 그래서 임금님도 정월 초하루 풍년 기원제를 올리는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에는 설을 ’달도설(怛忉說)이라 했다, 한자를 파자해 보면 재미있다. ‘달(怛)’ 자는 ‘슬플 달’자요, ’도(忉)‘ 자는 ’근심할 도‘자다. 두 글자 모두 ’마음심(心) 변‘ 이다.

정월 초하룻날은 ’ 근신하며 조심하는 날’이란 뜻 같다,

한 해의 첫 날인 설날이 편안해야 한 해가 편안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정월 초하루를 아주 경건하고 조심스럽게 보낸다. 남과 절대 다투지 않고 만나면 덕담만 나눈다. 수광은 아마 이런 뜻에서 달도설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설이나 추석 명절 때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오는 풍습은 분명 장려할 만한 풍습이다. 이런 풍습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 있는 나라는 거의 이런 풍습이 있는 것 같다, 필리핀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매우 낮은 나라지만 매 주말만 되면,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 즐겁게 해드리는 풍습이 있다.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요즘의 자식들은 부모를 자주 찾아 뵙기 힘들다. 자식들이 효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만든다. 고향의 부모님은 자식이 바쁜 줄 알지만, 찾아 오기를 은근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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