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사장 임명룡 칼럼

임명룡 서울지사장님
임명룡 서울지사장님

2023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1월 27일 현재 한국은 무난히 16강에 진출한 반면, 중국은 세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일찌감치 탈락하고 말았다. 중국이 무기력하게 탈락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조선시대 우리 선비들이 중국 아이들의 습성을 기록한 글이 생각나서 옮겨보기로 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인 홍대용(洪大容)은 영조 41년(1765) 11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중국 북경을 다녀오면서 여행기록문을 남겼다. 사은사 서장관으로 연행하는 숙부 홍억(洪檍)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동행한 것이다. 북학파 학자답게 다양한 관점으로 중국을 관찰한 홍대용의 연행록은 당시 중국의 상황과 풍습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그 속에 중국 아이들의 습성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한글로 옮겨보면 이런 내용이다.

“내가 일찍이 옛 중국 역사책을 읽다가, ‘조선의 어린아이들은 달리기를 좋아한다’ 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걸 읽고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린아이들이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천성인데 하필 조선아이들 뿐이겠는가. 그런데 막상 중국에 와서 어린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니 비록 까불고 장난을 좋아하는 아이일지라도, 우리나라 어린아이들처럼 달리거나 뛰거나 하는 모습을 전연 볼 수 없었으니, 중국과 우리나라 아이들의 풍습이나 기상이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아이들이 중국 아이들에 비해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홍대용의 기행문 외에도 여러 선비들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조선후기 문신 김경선(金景善)의 연행 견문록 ‘연원직지(燕轅直指)’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후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은 중국에 비해 조선 아이들이 유독 달리기를 좋아하는 까닭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조선 사람들이 잘 달리는 데 대한 변증설>이라는 논문을 작성했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먼 거리를 잘 달려서 준마(駿馬)와 맞설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말[馬]이 귀하고 수레가 없어서 도보(徒步)로 달리기를 익혀 왔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람보다 갑절을 더 걷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길로는 연경[北京]이다. 역졸(驛卒)이 걸어서 수레와 말을 모는 데, 역졸 하나가 일생 동안에 연경을 40~50회 정도 왕복하게 되니, 거리[里數] 수로 계산하면 40만 리쯤 되고 걸음 수로 따지면 1억 4천 4백만 보가 된다. 이는 얼마나 많이 걷는 것인가.” 이규경은 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중국 사람들은 수레와 말이 많아서 걸어 다니는 자가 없다. 그래서 빨리 걷는[行役] 것을 괴롭게 여긴다. 감발 차림으로 내달리듯 걷는 우리나라 사람과 비교하면, 마치 큰 붕새 앞에 조그만 비둘기가 종종거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끝으로, 이규경은 중국의 옛 기록[古史]에 실린 우리나라의 ‘달리기’에 관한 내용들을 정리했는 데 옮겨보면 이렇다. 왕회해(王會解)의 주석에 ‘동이(東夷) 사람들은 빨리 달린다.’하였고, 후한서(後漢書) 고구려 편에는 ‘고구려에서는 절을 할 때에는 한쪽 다리만 꿇고, 걸을 때에는 모두 달리기를 한다.’고 했다. 또 남연(南燕) 말 모용초(慕容超) 황제에게 ‘고구려에서 천리인(千里人) 10명을 보내왔는데, 천리인이란 하루에 1천 리를 갈 수 있는 자를 말한다.’고 했다. 또 중국 최초 한자사전인 설문(說文)에 ‘동(東)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하였고, 풍속통(風俗通)에는 ‘동쪽 사람들은 생동하기를 좋아하는 데, 만물도 땅을 재촉[觝觸]해서 생겨난다.’ 하였으니, 대저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음이 빠르고 또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만물이 땅의 기운을 재촉해서 생겨나는 동쪽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런 기록대로 우리나라가 우승까지 달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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