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박호길 원로 장로

박호길 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교회 원로장로

한겨울인 주말 오후 오랜만에 삼봉산에 올라왔다. 이름 높은 명산에 비한다면 언덕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다른 지역의 그 어느 명산보다 소중한 산이다.

옛 울진의 숨은 명산이 행곡(금산), 덕구(응봉산), 근남(난두산), 덕신(성중산), 울진(삼봉산) 등이 있다. 이러한 명산들을 넘는 울진의 옛길도 보배스럽다. 그 길은 “십이령 옛길”, “고초령 옛길”, “구슬령(주령) 옛길”이다. 그 중에 십이령길은 고대부터 경북도 내륙지방과 울진을 연결한 주요 교통로였다고 한다.

삼봉산에 오르면, 나무들은 힘을 얻어 키가 커지고, 줄기도 굵어지고, 잎이 무성해지다 겨울되어 잎 떨어지는 모습들을 보곤한다. 때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만나 담소를 나누는 마을의 “사랑방” 같은 장소이다. 남 보기엔 잠자는 소같이 볼품없는 산이라도 내게는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산이다.

삼봉산은 주위 봉화사를 옹위하고 있다. 이 산을 오르면 때론 좋은 작품의 시(詩) 를 쓰고 싶다. 나는 잊었던 내 유년의 고향, 산새들의 감미로운 멜로디 소리와 다정한 초목의 자연을 만난다.

어느 때는 겨울 산속의 마른 풀과 벌거벗은 나무들과 가랑잎의 침묵만으로 겨울 시련을 이겨내고, 어느 때는 삭풍 몰아치는 강추위에 잡목과 마른 수풀, 잎 푸른 소나무조차도 숨결이 정지된 듯한 냉냉한 엄숙함과 마주해야 한다.

이런 고행과 극기와 침묵 뒤에야 봄이 오느니, 비로소 겨울이라는 시련의 계절 동안 단련된 능력만큼, 자기의 멋과 아름다움과 낭만을 꿈꾸게 되느니, 자연에게서 인간 삶의 이치를 배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서나 비극과 불운은 오는 것, 묵묵히 이겨내야 하는 고행과도 같은 극기의 한 시간은 있는 법이다. 삼봉산을 내려오는 길엔 겨울처럼 막혔던 가슴이 트이는 듯, 새삼 울진의 명산, 삼봉산의 가치를 발견한다.

위대한 발명, 발견, 창조의 영감마저도 사소한 것에서 얻어지기도 한다. 하찮은 집에서 인물이 나듯이 초라한 몰골에서 불후의 작품이 태어난다. 볼품없는 언덕을 오르내리며 에밀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이란 명작을 썼고, 애틀랜타 근교에 살던 평범한 주부 마가렛 미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명작을 썼다.

이처럼 평범하고 대단치 않은 산하에서 숱한 작가, 예술가, 발명가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내 어찌 미련하게시리 환경을 탓하랴! 생활이 힘들수록, 환경이 별거 아닐수록, 오기를 가지리라.

삼봉산을 오르내리며 공기와 햇살과 초목과 기꺼이 악수하며 살가운 눈웃음을 나눈다. 이따금 흐르는 냇가의 물소리가 살며시 귓가를 간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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