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박호길 교회 원로장로
박호길 교회 원로장로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매년 봄이 오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는 어린아이의 서투른 발걸음에서, 어린 시절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학교에 가게 되는 나를 위해서 챙이 달린 빵떡모자를 사주셨다. 그리고 노트가 귀하던 시절이라 매끈한 종이를 모아 실로 묶어주셨다. 앞가슴에는 손수건을 네모로 접어서 핀으로 꽂아도 주셨다.

나는 빵떡모자에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첫 등교를 하여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운동장에서 줄서기를 하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고갯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에 어머니는 내 등을 어루만지며 우셨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내 모자에도 앉고, 내 옷자락에도 얼룩을 만들었다. 나는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왜 자꾸 우시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눈물만 흘릴뿐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눈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장성하여 맏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전날 밤이었다. 내일이면 학교에 간다는 기쁨과 설렘에 늦도록 이것저것을 챙기던 아들이 잠이 들었을 때, 잠자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배움의 첫 길에 들어서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큰 자식의 아버지가 된 것이 기쁘기도 하고, 또 고생길에 서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삶의 첫 삽을 떠야 하는 아들에 대한 기대도 담겨 있어서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옛날 어머니가 나의 손목을 잡고 학교에 갔다가 올 때, 우시던 마음의 한 조각을 읽게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봄이 오면 개나리가 피어나고 수많은 젊은 엄마들은 어린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게 된다. 이처럼 학교로 향하는 어린아이의 설렘은 바로 봄의 향기가 아닌가. 그것은 봄에는 꽃을 피우려고 매달린 꽃망울처럼 새롭게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서투름이 만발하기 때문이다. 누런 잔디잎의 바닥에 파릇하게 솟아나는 풀잎의 서투름은 바로 겨울을 이기고 새롭게 탄생하는 생명의 진지한 눈빛이며, “버드나무 끝에 피어난 조그마한 망울도 무엇이 될까?” 하는 조바심에 눈을 뜨는 여리디여린 생명의 손 짓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얼음 밑에 아무것도 없는 듯이 숨어 살다가 얼음이 녹으면, 튀어나오는 작은 풀잎의 몸짓은 속으로 품고 있던 삶에 대한 끝없는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

이렇듯 어린아이도 배움의 자리에 앉아야 홀로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고, 배움의 씨앗을 가슴에 품어야 삶의 거대한 값진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심고 그것을 어떻게 가꿀까! 하고, 생각하는 일은 봄의 축제에 참여하여 다른 인생의 세계를 보기 위한 첫 걸음인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날이지만, 그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에 따라서는 새날들의 환희가 느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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