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신문 서울지사장

임명룡 서울지사장님
임명룡 서울지사장님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1973년 발표된 조병화의 시 <해마다 봄이 되면>의 1연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맞는 국어시간에 이 시를 배웠다. 그해 삼일절 공휴일은 음력으로 2월 1일이었고, 어른들은 그날을 ‘일꾼 날’이라고 했다. 동네에서는 몇 집씩 나뉘어 아침부터 성찬을 차려놓고 동네 청년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옛날에는 ‘머슴 날[奴婢日]’이었던 것이 머슴제도는 없어졌고, 대신 동네 청년들을 대접하는 풍습으로 그때까지 마을에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음력 2월 1일은 본격적인 농사에 앞서 한 해 동안 수고로울 젊은이들에게 미리 위로를 하는 날이었다. 어머니 심부름을 받고 새벽부터 이집 저집 뛰어다니며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하나같이 부지런하고 듬직한 동네 형님들이었다. 학교에서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는 구절을 배울 때 그래서 더 실감이 났다. 그 시를 배우던 날은 경칩(驚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봄’을 영어로 ‘spring’이라 하는 데, 말 그대로 스프링처럼 세상만물이 튀어 오르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위틈이나 땅속에서 솟아나오는 ‘옹달샘’ 또한 영어로 ‘spring’이니, 용수철처럼 ‘솟아오르다’는 의미에 근거해 보면, ‘spring’은 동사 자체가 그대로 계절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칩’이란 단어도 마찬가지로 그런 의미가 들어있어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개구리가 얼음 녹는 소리에 놀라[驚] 어두운 땅 속에서 칩거(蟄居)하고 있던 겨울잠에서 깨어나 밝은 세상으로 툭 튀어 나온다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우리말 어원사전을 찾아보면 ‘봄’은 동사 ‘보다’의 명사형이 계절 이름으로 정착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볼 때 영어의 ‘spring’은 자연중심의 직설적 표현이고, 우리말의 ‘봄’은 인간중심의 관조적 표현이라 하겠다.

한편, 대체로 ‘일꾼 날’과 경칩은 거의 붙어있다. 본격적인 봄이 비로소 시작되는 시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끊임없이 순환적으로 찾아와 삼라만상의 아름다움을 장식해주는 데 봄은 시작을 장식한다. 옛말에 ‘봄의 신(神)’을 동군(東君) 또는 동황(東皇)이라 칭했는 데, 오행(五行)에서 봄은 동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일 년 중에 첫 번 째요(一歲之首), 사계절의 으뜸이라(四時之尊), 그래서 동군이라 한다고 했다. 주역의 원리인 원형리정(元亨利貞)에서 으뜸[元] 또한 ‘봄’이다.

그래서 봄은 생명의 탄생을 의미했다. 양기가 상승하는 계절로, 대자연과 인류는 모두 봄에 번식하고 생육한다. 옛날 우리나라 풍습에 아들을 낳고자 하는 집에서는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경칩 때 샘물을 받아두었다가 부부가 함께 그 물을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게 된다는 속설[俗信]이 있었다. 경칩에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키듯, 그 때 받아둔 물은 생명을 탄생시킬 것으로 생각했다. 또 소동파(蘇東坡)는 봄밤[春夜]이라는 시에 읊기를 “봄밤 한 때는 천금에 값한다(春宵一刻直千金)”고 했다. 이 모든 표현이 부지런히 생명을 잉태하고 약동시키는 봄이라는 계절에 연유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봄맞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봄을 맞는 것을 한자로 영춘(迎春)이라 하는데 영춘문, 영춘당, 영춘헌, 영춘정 등 봄을 맞은 건축물도 많았다. 모두 특정한 둘레의 동쪽에 위치함은 물론이다. 이런 건물 둘레에는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개나리를 심었는데 개나리를 영춘화(迎春花)라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개나리 보다 매화를 중요시하여 한가운데 심었다. 그 까닭은 꽃에도 서열이 있어 ‘개나리, 서향(瑞香), 산수유는 매화의 시녀[婢女] 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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