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상스님
범상스님

인간은 살아가며 대목대목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 즉 행복을 이루겠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새해는 바람도 많고, 그것에 도달하는데 방해 (부정 탄다) 가 된다는 금기도 많았다.

그것이 지나치면 억압과 차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정초가 되면 특히 ‘여자는 어디 어디를 가서는 안 된다’ 는 등 현재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금기들이 곳곳에 있었다.

따져보면 그 시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천태종과 같은 불교교단은 비구니스님(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천주교에서는 여성(수녀)은 아예 성직자가 될 수 없으며, 여성 사제(목사)를 인정하는 극히 일부 개신교단 역시 권한을 엄격히 통제한다.

이러한 것들은 종교는 신성하다는 지나친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터부(taboo)이며, 인류생존에 있어 육체적 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끌어 왔던 남성중심의 사회가 만들어낸 필연적 산물이라고 본다.

갑진년은 청룡(靑龍)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덕담과 희망에 힘을 보태는 것 같다. 여기에 운명예언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새해운세를 공언하고, 운명론에 무관한 듯 보이는 사람들까지 삼재라며, 지레 걱정을 하는 등 참으로 시끌벅적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오래된 문화현상으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은 한결같이 잘 살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각자 나름의 행동을 실행하기 때문이다.

‘잘 살겠다는 마음’은 생명체들의 본성이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불성(佛性)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잘 살겠다는 마음’에는 허물이 없다. 다만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 대해 팔정도(八正道)라는 이상적인 길을 제시한다.

공자 역시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했고, 붓다는 “모든 생명체는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대를 금기[不淨] 또는 차별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용의 해, 용은 여러 의미로 표현된다. 임금님의 옷을 곤룡포(衮龍袍)라 하듯이 전통적으로 용은 최고의 권위와 우순풍조의 자연조화를 주관하는 신수(神獸)로서 나타난다. 임금과 황제의 권위는 백성이 편안한 태평성대를 이룸으로서 그 책무를 다한다. 따라서 용은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신성한 권위가 아니라 모두는 평등하다는 입장에서도 해설되어져야 한다.

우리말로 용은 미르이다. 미르는 미래를 의미하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는 ‘용하다’로 통하며, 미르(용)가 사는 하늘의 강은 미리내(은하수)이다. 그래서 용은 진(辰;별)으로서 별이다. 하늘의 별[辰]이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오면 ‘아이 벨 신(娠)’이요, 열 달 뒤 태어나면 생신(生辰)이 된다. 이처럼 누구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하늘에서 별이었고, 부모님에 의지해 이 땅에 왔으며, 이승의 인연이 다하면 칠성판에 누워 별나라로 돌아가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죽음을 ‘칠성판에 눕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석기시대무덤인 고인돌에서부터 북두칠성을 새겼던 이 땅의 오랜 가르침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왕과 백성’ ‘남녀노소’ ‘귀와 천’의 차별 없이 별과 같은 소중한 존재로서 서로 존경해야 한다. 이때 용은 하늘에서 땅으로, 그리고 또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행복을 지켜주고 미래를 열어주는 존재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갑진년 한 해 마주하는 상대가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행복의 동반자로서 하늘의 별처럼 모두가 아름답게 빛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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