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면 신화리  전이중
동네 노옹(老翁)의 말씀에 의하면, 북면 새마는 확실하게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먼저 평지마에 여(余)씨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담양전씨 田孝先이란 선비가 임하골(臨河谷)에 터를 잡았으며, 새로 들어 왔다 하여 마을 이름을 ‘새마’라 했다 한다.

구정을 지나면서 우리동네에서 제일 먼저하는 일은 보름날 성황(城隍)제사이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음력 1월10일 동네 유사와 원로 10여명이 동 회관에 모여 제관을 파임한다.

그런데 가끔 젊은이 중에서 마을 성황당에 누구에게 무엇 때문에 제사를 지내며, 왜 석 잔 술을 올리는 지 묻는다. 이에 대해 약 300여년 전부터 흘러 내려온 처녀귀신 설화를 소개한다. 

옛날 옛적에 태백산 천신제(天神祭)에  제물로 바친 얼룩송아지가 돌아 다니다가 동네로 들어왔는데 동민들이 임자없는 송아지라 하여 잡아먹어 버렸다. 고기를 먹은 동민중에 담양전씨(潭陽田氏) 죽림파 후손의 처녀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이 때부터 동네에 크고 작은 재앙이 일어나니 야단이었다. 용한 점쟁이는 처녀귀신이 마을을 해치고 있는데, 그대로 두면 동네가 망할 것이니, 처녀귀신을 성황에 모셔야 한다고 했다.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성황에 같이 모셔 제사를 올리고부터는 신기하게도 마을에 재앙이 사라지고 평온했다 한다. 그리하여 새마 사람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성껏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새마 성황제사 때 석 잔의 술을 올리는 것은 천신(天神), 지신(地神)에다가 담양전씨 처녀신(處女神)을 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부터 죽림파 사람들은 집안 처녀귀신에게 절을 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도 죽림파 후손은 새마 성황에 절을 하지 않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천신께 바친 제물을 인간들이 잡아먹었으니, 신이 노하여 한 처녀가 희생되었으나, 이 처녀신의 원혼을 잘 달래어 오히려 새마 동네는 경사가 겹치고, 큰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
이후 새마는 ‘선비의 마을, 부자의 마을’로 불리우며 번성해왔다. 참으로 고마운 처녀귀신이다. 영원무궁토록 이 처녀신을 잘 지켜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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