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주 시인, 칼럼니스트

 

이종주 (시인, 칼럼니스트)
이종주 (시인, 칼럼니스트)

올해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탄생 11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1916년 울진 말루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가 뒤편에는 소나무숲과 대나무숲이 이어지고, 산길을 돌아 10여 분쯤 걸으면 말루해변이 있다. 남대천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 기수역에는 철새가 내려앉고, 해변에는 수평선이 눈에 와 걸린다.

유년시절 그는 틈만 나면 산을 올랐고, 지치면 바다로 나가 수평선과 햇빛을 바라보며 몸을 맡겼다. 산과 바다, 강렬한 빛과 모래의 질감은 그의 감각에 풍경이 아니라, ‘구조로 각인되었다.

고향은 그에게 세계가 시작된 자리였다.그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다. 생가를 찾아 사진을 찍어 오고, 아내와 아이들과 말루해변을 걸으며 그림을 구상했다. 서울에서 살 때도 울진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았다. 아내는 생계를 책임지며 네 아이를 키웠고, 그는 화가로서의 시간을 견뎠다.

유영국에게 고향’ 은 출신지 이상의 의미였다. 그는 “ 나는 산을 그린 적이 없다. 그러나 산의 정신은 평생 그렸다” 고 말했다. 이 문장은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열쇠다. 그는 자연을 옮겨 그리지 않았다. 대신 자연의 구조를 기억했고,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점···색으로 번역했다.

생가 뒤 금강송 숲의 수직성, 협곡의 응축된 깊이, 동해 수평선이 밀어올리는 원형의 감각은 그의 화면에서 구체를 떠난 채 질서로, 긴장으로, 음악적 박자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그의 추상은 차갑지 않다. 풍경을 지운 자리에 풍경의 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추상은 고향 산세의 구조적 기억이라는 말로 설명되어 왔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유영국의 화면은 늘 방향을 갖는다. 위로 솟는 힘과 가로로 확장되는 긴장이 충돌하고, 색은 감정이 아니라 중력처럼 작동한다.

이 점에서 그는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 실험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지역의 체험으로 다시 조직한 보기 드문 작가다. 한 해외 큐레이터가 그의 회화는 동아시아 풍경의 체험을 세계 추상의 문장으로 번역한 문법서라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탄생 110주년을 맞아 여러 기관이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지평을 확장해 온 작가를 기리는 일은 분명 반갑다. 다만 그 고향 울진의 이름이 이 흐름에서 충분히 호명되지 않는 현실은 아쉽다. 같은 추상미술가 김환기가 목포시의 전폭적 지원 속에서, ‘도시의 자산으로 자리 잡은 사례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유영국의 예술은 이 세 가지를 이미 보여준다. 그는 울진의 자연을 세계의 언어로 번역했고, 그 번역은 다시 울진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문화 자산이 된다. 그의 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한 도시가 자신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울진이 앞으로 나아갈 길 역시 분명하다. 자연을 모티프로 삼되 자연에 머물지 않고, 그 풍경을 색과 구조와 이야기로 확장하는 도시. 유영국이 평생 그려온 산의 정신처럼, 울진도 이제 자기 중심을 가진 문화 도시로 서야 할 때다.

그의 회화가 증명하듯, 지역은 세계로 나아가는 가장 단단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의 이름은, 분명히 울진이다.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