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의 월송정에 올라 .... 42회
얼마 전에 영덕에서 울진을 지나 강릉으로 가는 열차가 개통되었다. 동해안의 새로운 명물이다. 7번 국도를 따라서 나란히 개통된 철로는 아주 신선한 지각변동이나 다름없다.
철로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기찻길이라는 단어가 훨씬 정감 있다. 매일 단조롭기만 하던 출근길이 훨씬 다양하고 정확한 시간에 마주치는 열차는 동심 속의 한 때를 연상시키게 한다.
초등학교 국어책에는 ‘아름다운 신호’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열차를 운행하던 기관사는 기찻길 옆의 작은 집을 지날 때마다 손수건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 매우 고마웠다.
어느 날 그 손수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기관사는 용기를 내어 그 집을 찾아보았다. 손수건을 흔들어 주던 작은 소녀가 아파서 누워 있었다는 내용이며, 이후의 일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기차 길옆의 아이는 그렇게도 시끄러운 굉음 속에서도 잘도 잔다는 동요도 있다. 후포를 지나 영해로 가는 열차를 출근길에 마주치는 일이 약속이나 한 듯이 일과가 되어버렸다. 기찻길에는 많은 낭만이 배어있다.
상상 속의 은하철도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꿈과 낭만의 철도였다. 로버트 테일러가 열연했던 모정이란 영화에서도 기차는 서구인들의 낭만이 듬뿍 배어있어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다. 입대하는 군인들의 모습에도 기찻길과 열차는 당연히 등장하는 배경이다.
오랜 추억 속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기차 타고 떠나는 수학여행을 빼놓을 수가 없다. KTX가 등장하면서 서울과 부산이 일일생활권이 되기도 했다.
일제는 동해안 열차를 개통하여 만주 침략과 수탈의 발판을 삼으려고 오래전부터 계획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 동해선 열차가 7번 국도와 나란히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주민들은 오랜 염원인 열차에 탑승하며 만면에 희색을 띠곤 한다.
작은 시골에서도 역세권이란 말이 흔치 않게 들린다. 비단 열차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 열차 길이라면 당연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거의 일주일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운행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의무실을 운영하면서 잊지 못할 일들이 참 많기도 했다. 그 여행 기간에 모든 일을 열차 안에서 해결한다. 청산리 대장정 기간에 중국의 야간열차 안에서 진료하던 일도 여전히 기억 속에서 남아있다.
아직은 한가하고 고즈넉한 시골 역이지만, 주민들은 나름대로 기찻길과 열차가 가져다주는 자부심을 한껏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사라진 기적소리가 못내 아쉽다. 승용차의 경적을 울리지 않는 요즘의 추세인지라 들릴 듯 들리지 않는 기적소리가 아쉽기만 하다.
울진군을 종주하는 동해선은 아름다운 배경 못지않게 기찻길과 더불어 항상 멋이 깃든 낭만 속의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