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임 승 호

        
▲ 임승호 (북면 주인 거주)
울진읍에서 남쪽으로 가다보면 근남 수산리에 닿는다. 여기서 벼랑길을 꼬불꼬불 돌아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면 계곡을 끼고 기암절벽에 매달려 곡예를 하며 갖은 모양의 송림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곳곳의 조그마한 모래사장, 소, 담, 암반에 노니는 은어의 무리 등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더한다.
 여기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기암절벽을 이룬  창옥벽 , 수태극 등 특유한 이름의 명소가 30여개소가 있다.

계곡 양쪽 절벽에 흰빛을 띠는 화강암이 풍화되어 장관을 이루고 시냇물이 굽이쳐 쏟아지면서 곳곳에 바위 바닥이 깊게 패여 작은 물항아리를 이루고 있다. 절 주변에는 무성한 굴참나무가 있고 우거진 계곡의 폭포 등이 어울려 하나의 선경을 이루고 있어 울진의 소금강이라고 불리고 있다.

불영사는 스님의 말씀과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신라 28대 진덕왕 5년(651)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의상대사가 맨 먼저 세운 절로서 대사가 단하동 이라는 곳에 올라가 북쪽을 바라보니 형세가 마치 인도의 천축산과 같다하여 천축산이라고 칭하였는데, 어느 날 연못에서 다섯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치길래 이상히 여겨 금탑봉에 올라가 굽어보니 연못에 독기 품은 용이 9마리가 숨어있었다.
의상대사는 그 용에게 설법하고 절을 세우려고 했는데 용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자 신의 힘을 빌어 주술을 외우니 용은 견디다 못해 바위를 깨뜨리고 산을 뚫어 도망쳤다. 여기다 세운 절은 천축산(653m) 구룡사라 했다.

연못에 비친 부처님 형상을 하는 바위를 불영암, 혹은 불 바위라 하고 용이 산을 뚫었다는 자리를 용혈이라 하며 용이 도사리던 곳을 오룡소라고 한다.
그 후에 오랜 세월이 흘러 뒷산 절 서편에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부처님의 환영이 늘 연못에 비치므로 절 이름을 불영사라고 개칭하였다.

현재 이 절은 대웅전을 비롯한 10여동이 크고 작은 와옥건물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창건 당시의 건물은 하나도 볼 수 없고 거의 다 조선시대 중수한 것으로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조 태조 5년 (1396)에 왜구가 쳐들어와서 불영사의 전 사옥을 불태워버렸고 나한전만 남았는데 이듬해 소설법사가 재건하였지만 임진왜란으로 다시 대부분이 소실되고 극락전과 응진전이 겨우 남았고 광해 원년 (1609)에 성원법사가 다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극락전, 웅진전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그 외 대웅보전 범종루 황화당, 명부전, 조상전, 산신각, 칠성당 등의 건물들이 있다. 창건당시 유적으로는 3층 무영탑과 대웅전 축대 밑에 돌 거북 2기가 있다. 무영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은 신라시대 탑으로 탑신부는 제대로 있으나 상대중석이 없다.
상대중석은 네 쪽 중 두 쪽은 대웅전 앞마당에 남아 있는데 나머지 두 쪽은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불영사는 옛 슬기가 남아 있는 고찰로 자연과 동화되어 사철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청태가 낀 기왓장과 오랜 세월 빛바랜 단청이 주변의 우거진 신록과 어울리고 가을에는 낙엽과 어울리며 겨울의 설경이 친밀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던 1000년 넘은 굴참나무는 지금은 죽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이곳의 금강송은 한국최고의 수고(樹高,50~100m)와  최다 분포지역으로 식물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밖에 불영사에는 석가모니, 문수보현 보살좌상, 금강 역사상 불영사 시창기, 목판만고화 불련목제 현판 황화실, 여러 점의 탱화, 직인과 천축산불영사가, 칠중수계의궤, 현행서방경, 고봉화상선요, 목판본지장보살본원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불설무량수경, 불설천지팔양신주경과 배례석과 석구 등이 있다.
 임승호/북면 주인 거주

저작권자 © 울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