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 지킴이 ■ 후포 40년 이발사 김 진 성씨


물좋고 인심좋은 후포에서
 
평생을 사는 나는 행운아입니다.

▲ 40년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김진성씨
“삶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장(場)입니다.”
푸른 바다 냄새가 폐부를 깊숙이 찌르고, 오른쪽 산언덕 등기산 푸른 소나무가 아름다운 마을. 이곳 후포리에서 40년째 「진 이발관」을 운영해오고 있는 김진성(64)씨의 첫마디다.

「진 이발관」은 후포 안쪽 마을에서 차 한대가 겨우 통과할까 하는 골목을 따라 동부초등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홍청백색 띠가 도는 이발관 등(燈)과 함께 나타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인내(忍耐)’라고 쓰인 수석(壽石)이 보인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삶의 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김진성씨는 네 살 때 인근 영덕군 영해에서 6.25사변을 피해 부모님의 등에 업혀 후포에 정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 병석에 누우시는 바람에 맏이였던 그는 갓 스무살쯤에 가장이 되었다.

잠시 2, 3년 고깃배를 타기도 하고, 막노동도 해 봤다. 24세 경 이발을 시작한 뒤로 ‘한 우물만 파보자.’라는 결심을 한 뒤, 어느새 40년이 지나 후포에서 세 번째 경력의 이발사가 되었다. 

이발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데 있어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이발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의 일에 고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왔다는 우회 표현일 것이다.

그가 왜 첫 마디에 삶은 인내심의 시험장이라고 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것 같다.
가게 벽면에는 온통 산악회 등반 사진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 사진, 그리고 메달 등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후포 산악회에 가입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점차 운동 강도가 더한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산악 등반을 열심히 했죠. 그런데 이발소 일이란 것이 아침 일찍부터 해야 하는 것이니까 남들보다 더 일찍, 때로는 동이 트기 전에 산을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둡다보니 돌에 걸려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관절에 무리도 많이 가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평지를 뛰어보는 것이 어떨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해안선을 따라 달린 것이 마라톤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3년전인 2006년도「울진 게 축제 마라톤 대회」에서 7등으로 입선하면서 마라톤은 그의 생애 또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다음 해인 2007년도에는「경주 벚꽃 마라톤 대회」에서 하프-코스(21.957km)를 완주했다.
2008년도에는 같은 대회에서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아마 울진군에서는 지금까지 63세의 나이로 마라톤 풀 코스를 완주한 최고령자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가 고령의 나이에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오로지 자기 스스로 몸상태에 따라 조절하면서 달리고 또 달린 것 외에는. 「울진마라톤클럽」과 같은 동호회에 들었다거나, 특별히 별도의 이론적인 공부를 한 적도 없었다는 것.

과거에 부친께서 젊으셨을 적에 영해에서 영덕까지의 마라톤 경기에 참가했고, 또 노모께서 백수를 바라보실 정도로 현재 정정하시다는 사실들로부터 천성적인 건강과 체력이 원동력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자녀들에게 ‘언제나 자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할 것’을 교훈(敎訓)하고 있다는 그는, 언제나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해안선을 따라 뛰고, 여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발관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고 있다.

 “이발관은 생명줄입니다. 쓰러져도 여기서 쓰러질 것입니다. 꾸준히 운동하여 남은 인생 70이 되어도 이발을 계속할 것입니다. 물 좋고 터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고향, 후포가 정말 좋습니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고 있으니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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