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 永 昌   매일신문 논설위원

고단한 세상살이를 편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비겁해지면 된다고? 비겁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비굴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얼굴이 두꺼워져야 한다.

비겁하고 비굴하게 굴어도 부끄러움을 타면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두꺼워지면 예의와 염치가 맨 먼저 마음의 집을 나간다. 무례해야 무뢰배가 될 수 있듯이 후안무치해야 비겁하고 비굴해질 수 있다.

불교 원시경전의 하나인 법구경도 ‘얼굴이 두꺼워 수치를 모르고 뻔뻔스럽고 어리석고 무모하고, 마음이 때 묻은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쉽다. 수치를 알고 항상 깨끗함을 생각하고 집착을 떠나 조심성이 많고 진리를 보고 조촐히 지내는 사람에게 인생은 살아가기 힘들다’고 가르친다.(법구경 244, 245) 한마디로 부끄러움을 몰라야 세상살이가 편하다는 말이다.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벤치마킹을 권한다. 벤치마킹 대상은 정치인들이다. 과거 한국 정치인의 주요 덕목은 두꺼운 얼굴`돈`체력이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고도 언제 그랬느냐고 시치미를 뗄 수 있는 얼굴, 남의 돈 끌어다 쓰거나 눈먼 돈 챙길 수 있는 능력, 새벽부터 밤늦도록 사람을 만나도 지치지 않는 건강이 필수다.

검찰도 얼굴 두께에서 정치인에게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스폰서 검사 파문으로 검찰 개혁의 논란이 거센 와중에 검찰총장이 검찰만큼 깨끗한 데가 있느냐고 강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총론은 이쯤에서 접고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얼굴 두께 늘리기에 이어 적반하장 신공도 익히면 많은 도움이 된다. 또 실력 없이, 노력 없이 얻는 어부지리 출세법을 익히는 게 좋다. 그러려면 인간답게 산다거나 꿈꾸는 자, 새롭게 바꾸려는 자는 마구 짓밟아 놓을 필요가 있다.

대신 2류, 3류 정신으로 무장한 아부하는 자와 비겁한 자와 확실히 손잡아 둬야 한다. 그러면 절대 추월당할 염려도 없고 배신해 봐야 저만 손해이니 ‘악어의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덧붙여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겨라.

원수와 반대자에겐 모욕과 조롱을 안겨 도발하면서 실수를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잘못은 이들에게 덮어씌우고 자신의 실수와 실패는 무조건 감춰야 한다. 아울러 보스가 화살을 쏘는 방향으로 무조건 과녁을 갖다 놓을 수 있는 충성심과 성의 정도는 보여야 한다. 충언과 고언은 불편한 반면 아부는 절대 출세를 배신하지 않는다.

기원전 7세기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역아(易牙)는 별다른 재능 없이 요리 솜씨 하나로 환공(桓公)의 총애를 받았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심리를 자극하는 요리 기술과 타고난 말솜씨를 결합해 다양한 방법으로 권력자의 비위를 관리한 것이다.

역아는 간신 수조, 개방과 결탁해 만년에 판단력이 흐려진 ‘춘추 5패’의 선두 주자 환공의 신임을 바탕으로 권력을 휘둘러 제나라를 쇠락의 길로 이끌었다.

환공은 자신을 도와 패업을 이룬 명재상 관중(管仲)의 역아를 비롯한 간신 소인배를 물리치라는 당부를 잊고 이들을 기용했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역아는 사람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환공의 농담 한마디에 세 살배기 아들을 삶아 바친 사람이다.

이처럼 대간신은 언제나 만고에 없는 충신으로 비쳤다는 점을 명심하라. ‘충신’의 실상을 모르는 환공과 같은 혼주(昏主)는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권력이 생겼으면 돈과 명예도 함께 좇아야 한다. 권력만 가지면 된다는 생각은 철부지나 하는 발상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하나, 가난이 문고리를 잡으면 행복이 창문 밖으로 달아난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다.

따라서 신뢰와 협력, 화합, 사랑, 배려, 양보 이런 단어는 옷장 속에 숨기는 게 낫다. 도덕 교과서는 교과서일 뿐이다. 바보처럼 살았다고 애면글면할 필요는 없다. 지금이라도 인생관을 바꾸면 된다.

하지만 제시한 방법이 더 어렵다는 ‘세상의 바보들’도 아마 있을 게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그냥 생긴 대로 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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